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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기다림 의자는 기울어져 있었고곧 비가 내림으로써 모든 게 완벽해졌다. 더보기
평화 둘 다 서울에 있다 보니 오히려 소홀해져 매우 오랜 시간 뜸을 들이며 만나곤 하지만, 그럼에도 늘 편한 친구 평화와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알게 됐다. 입학식 날, 우리는 반 배치를 받고 운동장에서 자기 반이 표시된 팻말을 찾아 그 앞에 두 줄로 앉아 있었고 초등학교 동창들과 같은 반이 된 녀석들이나 끼리끼리 모여 잡담을 나눴지 대부분은 어색하게 땅만 보고 있었다. 그 어색함 속에 등장한 녀석의 모습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렬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게 남아있다. 오리걸음으로 돌아다니면서 "안녕, 난 평화라고 해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고 나를 포함한 어중이떠중이들을 당황하게 하며 반강제적으로 악수를 받아낸 무섭고도 느끼하게 생겼던 평화라는 종족이 어린 내겐 참 희한하게 보였다.신앙이라는 .. 더보기
달빛 어젯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뒤돌아서 달을 몇 번이나 다시 쳐다봤는지 모르겠다.달빛에 맥주 한 잔 마시고픈 생각이 간절했지만 도대체가 부를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좀 서럽더라.친구는 아무래도 없어도 좋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한 세기쯤은 우습게 보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보기
은어낚시통신 // 어딘가로 가야한다. 그렇지 않을 내용이라는 거 빤히 짐작하면서도 단편, 단편을 읽을 때마다 자발적이든 무언가에 홀렸든 자취도 없이 떠나간 사람들이 결국 돌아오기를 바랬던 것 같다. 뒷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곧장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다시 밥 한술 떴으면 하는 바람이었나? 작품에서 한 가지 확실하게 그리고 있는 건 결국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과연 작품 속 인물들은 무엇을 찾아 그렇게 떠나야만 했을까? 어떤 존재의 시원을 가리키는 이상향을 찾아 떠난 것인가? 그들만이 깨달은 삶의 본질인가? 역마살이 서린 인간의 숙명 때문일까? 혹은 기계적이며 나태한 현실 안주에서의 도피인가?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든 가장 큰 물음은 그것이 무엇이 됐든 모든 걸 다 버리고 갈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과 또 역으로 나라는 한 .. 더보기
겨울, 제천 새벽 세 시가 넘어버렸지만, 여전히 잘 생각은 않고 옅은 음악과 함께 웬일로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거리고 있다. 둘이 있으면 왠지 어색한 상대와 편한 대화를 나누기는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가 아는 무언가를 말해야겠다고 전전긍긍할 필요 없이 상대방이 아끼거나 좋아하는 것에 대해 물으면 그만인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음악을 묻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사진을 물어보라. 테이블의 맥주가 줄어드는 건 그저 시간문제일 테며, 막차를 타기 위해 방정맞게 뛰어야 할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이의 빛이 나는 눈빛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곤 한다. "아주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찾아봐. 물론 실망도 할 수 있지만, 분명 재밌을 거야."사진을 좋아하는 이에게 사진을 물었고 열변을 토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