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서글픈 것

미라수 2011. 7. 27. 23:28


빗줄기 자체는 처음과 같지 않은데 이미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점점 심해진다. 오늘밤은 한 시간씩이 무어냐 뜬 눈으로 지새야겠구나.

현관 앞 벽에서 아주 천천히 새던 물줄기는 이제 졸졸졸 흐르는 게 보일 정도로 새나오기 시작한다. 장판이 맞물리는 곳에 물기가 보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판을 뒤집어 보니 물이 흥건하다. 장판을 말아 걷고 수건으로 열심히 물기를 빨아들인다. 호텔에서 가져온 몇 장의 냅킨과 샤워장 한 장의 샤워장 타월이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100년만의 비가 언제 또 내일지 모를 미쳐가는 지구인지라 아무래도 개학 전에 새 집을 찾아봐야 할 것만 같다.

이럴 때 동생이라도 있었음 얼마나 좋을까.

오늘처럼 사방에서 연락이 많이 온 날이 있던가. 생일인 줄 알았다. 집에서도 친구들도 지인들도 고모할아버지까지… 전화로든 문자로든 카톡으로든 페북으로든 그들의 걱정과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음주에 출국인지라 그 전까지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하건만 오늘의 총리도 내일의 조찬도 모두 취소해야 한다는 게 좀 아쉽지만 나의 보금자리는 내가 사수해야지.

지난 밤 한기주가 삼성에게 역전타를 맞는 그 순간부터 잠을 자건 밥을 먹건 영화를 보건 무얼 하든지 한 시간 마다 한번씩 현관에 차오른 물을 퍼내니 108분마다 4 8 15 16 23 42을 몇 년이나 눌렀던 데스몬드가 된 심정이다.

바로 옆집 아저씨 아주머니는 어젯밤부터 물이 안방까지 차올라 번갈아 가며 화장실에서 쉬신다. ‘없는 게 죄지’라는 아저씨의 한탄이 귓가에서 쉬이 가시질 않는다. 오늘 하루에만 죽은 사람이 몇 명 이냐. 그것에 비하면 난 그저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 난리 중에도 낮에 영화를 두 편이나 봤다. 짐 캐리의 역작 트루먼 쇼와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이 연출하고 연기한 호랑이의 눈이 그것인데, 그녀 생각에 온통 가슴이 아픈 이 상황이 트루먼이 된 것 같더라. 데스몬드든 트루먼이든 오늘 참 가지가지 감정이입 한다.

젊을 적에 얼마든지 겪어 봐야지 이 따위 침수 같지도 않은 침수는 아무렇지도 않다. 그저 오늘 수없이 많이 받은 관심 중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단 한 건의 문자도 오지 않았던 것이 조금 서운하고 가슴 아플 뿐.

그래 야속한 당신 때문에 지금도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