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주입식 FTA

미라수 2011. 11. 9. 01:57



FTA는 참여정부가 꺼낸 카드였다. 현정부의 고 노무현 대통령을 이용하는 광고를 보고 심장이 요동칠 정도로 깊은 분노를 느꼈지만, 지난 정부 때 빼든 칼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누구를 다치게 할 칼일까?)
 
그 때도 참 반대가 많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더 어렸던 그 때 FTA를 바라보면서 아무리 많은 반대가 있을지라도 결국은 피할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기 때문에 불공정한 부분은 반드시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고 특히 농업 등의 분야에 돌아갈 피해에 대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고서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원안을 뒤집고 뒤집고서라도 FTA는 필연적이고 먼 훗날 역사는 반드시 노무현 정권의 FTA에 대해서 긍정적인 재평가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 난 그 누구보다도 FTA 결사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최근까지도 여전히 FTA, 타국과의 자유무역이라는 것은 거스르기 힘든 흐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인들도 제대로 모르는 그 내용을 일개 풋내기 학생인 내가 얼마나 제대로 깊이 인지하고 있을까마는 이미 표면으로 드러난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국의 쉰한 번째 주나 다름없어 보이는 독소조항들 그리고 의료, 농업 분야 등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뭐 하나 설득력 있는 대응책도 없는 이 현실과 자유무역협정은 서로 별개의 문제였다.
지금의 FTA안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출하며 반대를 하고 있지만 또한 자유무역이라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기에 언젠간 넘어야 할 산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 생각이 그렇게 모순적이지는 않다고 느꼈다. 다만 지금대로의 일방적이고 거대 기업의 배만 불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면 전면 보류하고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 
 
그런데 말이지,, 오늘 꽤 놀라운 일이 있었는데, 학교를 오가는 길에 나꼼수를 듣다가 문득 내 머릿속에서 나도 모르게 똬리를 틀고 있는 고정관념이라는 뱀 한 마리를 발견했다는 것. 
 
“한미 FTA는 꼭 할 필요가 없는 정책이었다.”
“그거 아니라도 수출은 잘 되고 있고, 지금도 잘 되고 있고…” 
라는 유시민 대표의 말을 듣는 순간.
 
‘아! 왜 FTA를 꼭 해야 하지?’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뎌지고 있긴 하지만 사실 지금도 잘 수출입하며 성장하고 있지 않는가?’
‘아니, 그보다 왜 나는 머리 속에 양국이든 다자간이든 그놈의 무역협상을 세계적으로 필연 적인 흐름이라고 깊이 못 박아 놓았지?’
‘왜 이런 생각이 자리 잡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 그 근원을 찾아간 끝에 이런 고정 관념은 주입식 교육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사회 과목을 배우면서(아니 사실 뭘 배웠는지 잘 모르겠다.)
GATT, 우루과이 라운드의 의의. GATT체제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뒤 이어 나온 것은? 1995년WTO. APEC는 아시아.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NAFTA. OECD는 무엇이며 언제 만들어 졌다.
이렇게 달달 외우기만 했을 뿐. 이러한 무슨 경제 협력체의 폐해에 대해서도 두어 줄은 나왔던 것 같지만 그냥 별 생각 없이 외우다 보니 세계적 흐름이라는 고정 관념이 자란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결론을 얻었다. 이래봬도 어렸을 때 배웠다 이거야 하면서 은연중에 세계적 흐름 운운하며 유식한 척한 것이라든지,,
 
아직도 너무나 어렵다. 어떤 게 나라를 위한, 국민 하나하나를 외면하지 않고 모두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인지 아마도 영원히 모를 것이다. 아니 동반 성장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나 하는 것일까? 나의 피로를 풀고 만족감을 얻기 위해서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 어깰 주물러 줘야 한다. 내 스스로를 주물러서는 절대 시원하지도 않고 내 팔도 아플 테니 옆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는 게 나다. 기계로 해결 하자고? 누군가는 돈을 가진 나를 위한 그 기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튼 꽤나 강하게 느껴지는 FTA의 빌어먹을 전망은 가진 자들이 더욱 없는 자들의 피를 뽑아 마실 것 같다는 것.
 
난 어렸을 때부터 ‘사회과 부도’책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 땐 뭐든지 커야 행복한 줄 알았던 시기였다. 국가들의 면적을 보면서 러시아, 캐나다, 미국을 부러워했고 인구수를 보면서 중국, 인도를 부러워했다. 국방비 지출 내역을 보면서 2위부터 20위까지의 나라를 합쳐도 미국의 국방비에 못 미치는 것을 보며 미국이란 나라의 힘을 동경했고 당시 우리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12,000 달러 정도 되는 것을 보고 외국의 여러 나라들과 비교를 해가면서 우리도 미국, 일본, 유럽처럼 20,000이 넘고 30,000이 넘으면 더 행복해 지고 부자가 되겠지?하면서 미래를 꿈꿔 왔었다. 
어느새 십 년이 훌쩍 넘게 흘렀고 엊그제 어느 기사에서 올해 우리나라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최대 24,000달러까지 달할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언제 이렇게 높아졌지?’
‘염병할, 근데 나아진 건 하나도 없어.’
‘저거 다 개뻥이야…’
 
사회과부도의 숫자들이 행복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이앤 듀마노스키가 저술한 ‘긴 여름의 끝’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기후나 에너지적인 어느 한 부분으로써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아닌 행성적 차원에서의 위태로운 지구를 말하며 경고하고 있는데 꽤 신선했던 저자의 관점을 인용하면서 "FTA를 통해 깨달은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에 관한 허접한 생각을 마친다. 



 
우리는 근대적인 생활 방식이 일으키는 혼란과 불안에 취약하다. 상호 의존과 세계화로 치닫는 오늘날의 경향은 인간의 취약성을 증대시킬 뿐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화 과정은 정말로 위험한 전략이다.(중략) 전 지구적 경제시스템이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후 변화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