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백묵의 추억
미라수
2011. 11. 28. 03:30
고등학교 3학년 수학 시간. 수학의 재미 여부와 상관 없이 늘 우리 모두가 피곤에 절어 있는 일 년. 난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진짜!), 그 시간 따라 졸지 않기 위해 두 눈 부릅뜨려고 발악을 하고 있었다. 수학 선생님은 초중고 10년을 통틀어 최고의 포스를 가지고 계신 3학년 부장 선생님이셨다. 포스도 종류가 참 다양한데 그 분의 포스를 표현하자면 뭐랄까,, 산山, 범虎, 곰熊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튼 어떠한 말이나 체벌도 필요 없이 그냥 눈빛 하나로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게 만드는 우루사 같은 분이셨다. (즐겨 입으시던 옷도 곰의 로고가 박힌 잭 니클라우스 였지...)
“임마! 맹물@ㄹ%&ㅎ(ㅍ!$%.”
“네? 네..”
분명 난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별안간 귓바퀴를 타고 흘러오는 고함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려보니 선생님의 강렬한 눈빛은 나를 향해 있었다. 서른여 명의 학생들 시선 역시 내게..
‘앗! 졸았구나.’
후다닥.
이미 눈빛들로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에 잠은 다 달아났지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뛰어갔다 왔다. 조용히 수업이 진행되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교실로 들어가는 순간 또 다시 선생님과 서른여의 눈들이 나를 주목 하면서 정적이 흐르는 것이 아닌가. 순간 묘한 분위기에 나는 섣불리 자리에 앉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왜? 왜?’라고 소리 없이 입만 움직여 댔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허허 이놈이 백묵을 맹물로 알아듣고 세수하고 왔구나.”
라고 말하시곤 푸근하게 웃으시던 선생님. 그 뒤로 이제는 보기 흔치 않은 분필을 발견하면 늘 그 선생님이 생각난다.
소리 없이 매끄럽게 써지는 매력도 재미도 없는 화이트보드. 온 아이들의 소름을 돋게 만들 수 있는 손톱 긁는 소리도 못 내는 화이트보드. 점점 칠판을 대신해 가는 그 화이트보드 덕에 쉬는 시간만 되면 어떻게든 분필 가루 안 마시려 숨 참아가면서도 신나게 창 밖으로 칠판지우개를 팡팡 두드렸다는 것을 요즘 아이들은 알까? 슥슥슥, 탁탁탁 소리만으로도 수업의 무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쉽게 부러지곤 했던 분필들과 녹색 칠판이 가끔은 그립다.(졸고 있다고 보드마카를 던지는 건 좀 그렇잖아. 손가락 마디 크기만한 얼마나 정감 있는 무기야. 던지기엔 분필만한 게 없지.)
우리에게 각별히 쏟으셨던 그 열정과 노력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항상 무서워하면서도 존경했던 선생님, 건강히 잘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