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사진이 내게 가져다 준 것

미라수 2012. 1. 12. 04:05

나도 사진이란 걸 제대로 찍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한 건 아마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서울대와 과학고에 미친 담임선생님의 또 다른 직업은 사진작가였다. 자신은 교사 이전에 사진 작가이며 주말에는 사람들을 데리고 이리로 저리로 강의나 출사 다닌다는 말에 ‘엥 정말?’하고 심드렁하게 생각했던 건 점수에 따라 비아냥거리기를 일삼았던 그를 원체 존경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더운 날이었을까? 추운 날이었을까? 아니면 적당히 따뜻한 어느 날이었을까? 아무튼 0교시 자율학습을 하느라 조용한 교실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들리는 교실의 적막을 깬 건 ‘이번 달 깜지 가장 많이 쓴 학생은 누구다’라고 말한 담임의 목소리였다. 담임은 우리에게 일정한 기간을 놓고 깜지를 쓰게 시켰으며, 처음으로 그 결과를 발표하던 날 깜지를 가장 많이 썼던 짝궁에게 담임선생은 부상으로 본인이 찍은 작은 사진 묶음을 주었다. 그날 처음으로 담임선생님의 작품을 봤다. ‘찍어봐야 얼마나 잘 찍겠어?’라고 은연중에 무시했던 내가 받았던 담임 사진들의 첫인상은 ‘취미로도 좋으니 나도 사진이란 걸 찍어보고 싶다’였다. 그 당시 광주 지하철 역사 안에 전시용으로 걸어두었었던 커다란 담임의 사진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시골 어느 집 마당에 자유로이 풀어둔 암탉의 사진이었다. 구도가 특별한 것도 아닌, 그냥 마당의 암탉사진이 그렇게 멋져 보이다니. 

사진기를 매고 다니기 시작한 건 재수 시절이었다. 당시 집에는 후지의 싸구려 하이엔드 카메라가 있었는데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은 재수생인 내가 유일했다. 형편상 따로 재수학원을 다니지 않고 집이랑 가까웠던 전남대학교 도서관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었는데, 전대 도서관은 공부만 할 수 있는 열람실로만 이루어진 백도(하얀 외벽 때문에 붙여진 이름)와 책을 대여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도서관인 홍도(이 역시 붉은 벽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의 두 건물로 이루어져있었다. 재수생이면 응당 백도에 틀어박혀 앉아서 공부에 집중해야 했지만 몸이 근질거릴 때면 수시로 홍도엘 들락거리며 재밌어 보이는 이 책, 저 책을 집어 읽었다. 특히 재수할 때처럼 미술과 사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은 적이 없었는데, 살면서 그 때만큼 ‘뽐뿌’에 시달린 적이 있었을까? 그 당시는 DSLR의 본격적인 붐이 막 일어나려고 할 즈음이었고, 나는 하이앤드 카메라의 한계에 부딪혀 한층 더 높은 성능의 디지털카메라를 간절히 염원했던 시절이었다.(그 때 가장 가지고 싶어했던 사진기는 미놀타의 7D였다. 7D의 거칠고 투박한 디자인은 지금 봐도 멋있어 보인다.) DSLR에 관한 도서관에 있던 책들은 하나도 안 빼고 모두 읽었고 집에 오면 인터넷으로 이미 보고 또 본 사진기들의 가격을 다시 한번 보고 한숨 쉬기 일쑤였다. 어찌나 질리게 읽었는지 이후론 그 어떠한 DSLR관련 서적을 읽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경험 덕분에 사진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와 사진기에 관한 기기적 지식을 쌓을 수 있었고 웬만한 필름카메라나 여러 디지털 장비들을 조금만 만져보고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뽐뿌가 강하게 일어나는 그 순간만 어떻게든, 어떻게든 넘기면 기기에 열광했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것을 그 때 절실히 느꼈는데, 그렇게 새로운 장비를 바라던 마음이 한달 쯤 지나니 거짓말처럼 사라지더라. 그 후 사진기는 수능보고 알바해서 사기로 마음먹고 집에 있던 하이엔드 카메라를 줄곧 들고 다녔다. 날이 좋거나 좀이 쑤시면 도서관에는 책가방만 덩그러니 놓아둔 채 이곳 저곳으로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가방에는 책 대신 삼각대가 들어 있던 날도 있었다. 너무나 하늘이 맑아 멋진 석양이 기대되는 날이면 도서관에서 뛰쳐나와 지는 해를 잡으러 높은 곳을 찾아 다녔다. 해를 담기 좋은 높은 언덕을 찾으려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수 키로 미터를 달린 적도 있었다. 정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해를 잡으려 뛰어다녔다. 수능 백일을 남겨두고도 중앙대나 여타 대학의 사진학과 진학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으니 사진 찍는 것을 참 좋아했었나 보다. 지금도 자주 사진기를 매고 집을 나서지만 그 때만큼의 사진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음을 안다. 그 때 열정의 절반만 됐어도 벽면에 멋들어진 사진 몇 장 걸어둘 수 있을 텐데... 작은 카페 한구석을 빌려 소소한 전시라도 해볼 텐데…

지금 블로그에 올리는 대부분의 사진은 대학교 오자마자 남대문에서 산 니콘의 수동 필름카메라 Fm2의 사진이다. 사진 포스트 하단의 작은 태그를 보면 fm2, vista, mf 50mm F1.4 등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진과 필름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은 렌즈에 관한 정보들이다. 대학에 오자마자 사진기는 사야겠는데 DSLR을 사기엔 돈이 너무 부족하고, 해서 그보다 훨씬 저렴한 중고필름카메라를 산 것인데 지금은 그 유지비로 DSLR뽑고도 남았겠다. 그러나 필름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는데 무슨 디지털이란 말인가? 최근 니콘 최고의 플래그십 D4를 발표했지만, 캐논 역시 1DX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이제는 그런 소식에 제품 정보만 한번 슥 훑어보고 지나간다. 차 값 뺨치는 그런 기기 살 돈 있으면 니콘의 필름 바디의 플래그십인 F6나 그 전의 F5, 혹은 중형 카메라를 살 것이다. 디지털 바디는 D700정도만 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필름 값이 부담스러워 함부로 찍지 못해 아쉬울 때가 많다. 특히 사람들 사진이 그렇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 최대한 많이 찍어야 좋은 사진을 건질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잖아.

사진을 찍으면서 느끼는 가장 좋은 점은 습관적으로 주위의 풍경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관찰하게 됐다는 것. 아름다운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그러면서 생각보다 우리 주변은 아름다운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트위터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계속해서 그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음이 좋다라고 말하기엔 사진이 너무나도 큰 역할을 해주었다. 사진을 통해서 연인이 행복해 하고, 사진을 통해서 추억을 간직하고, 사진을 핑계로 여행을 떠나고, 사진을 통해서 연예인과의 특별한 추억도 남길 수 있었다. 사진을 통해 자연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됐고, 이런 자연을 만든 신을 더욱 경외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사진이 내게 가져다 준 것들이 참 많다. 
 
내 다이어리 마지막 장에는 꼭 이루고 싶은 크고 작은 꿈들이 적혀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언젠가 작은 사진 전시를 여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요즘처럼 소스라치게 추운 날씨에도 오래된 수동 필름 카메라를 매고 집을 나선다.
미라수! 여전히 넌 허접이지만, 열정만큼은 오래도록 간직해라. 알았냐? :)









 지난 가을.
모처럼 석양이 예쁠 것 같아 재수시절 생각하며 태양을 잡아보려 했던 날. 
안전 때문에 건물의 옥상 문은 잠겨 있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