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세상에 예쁜 것

미라수 2013. 1. 22. 04:50






톰 행크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주연한 영화 터미널은 어느 재즈 뮤지션의 사인 한 장을 위해 말도 안 통하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수 개월을 공항에 갇혀 지내는 빅터 나보스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놈의 사인이 뭐길래 저 고생을 하는 걸까? 라는 생각도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그 마음 이해가 간다. 사인은 사인이 적혀진 종이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동경하는 인물을 만나 특별한 교감을 했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만남이 없는 사인은 그저 종이 쪼가리에 불가하다.


이젠 아예 볼 수조차 없어 아쉬운 분들이 있다. 내겐 박완서 할머니나 노무현 할아버지 등이 특히 그렇다. 재작년 땐가 알바하던 호텔에 열린 산수연이 생각난다. 주인공 할머니의 이름이 박완서임을 안 나는 흥분을 하며 어떻게 하면 사인을 받을 수 있을지 궁리를 하다 이내 고인임을 상기하고 깊이 안타까워했었다. 


중학교 땐가 교과서에 실린 단편 '그 여자네 집'을 통해 알게 됐지만, 정말로 작가님을 좋아하고 존경하게 된 것은 군시절 맹장 수술로 잠깐 청평병원에서 요양할 때였다. 코딱지만 한 청평의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소설 '그 남자네 집'의 감동은 느릿하게 불어온 그 해 4월의 봄바람과 함께 여전히 생생하다. 박완서 작가님의 책 속에는 잊지 말아야 할 우리네의 서글픈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러나 요즘 많은 젊은이는 파울로 코넬료나 기욤 뮈소만 알았지, 시답잖은 사진과 글이 난무한 에세이에만 열광하지 정작 소중한 우리의 문학을 등한시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쉬울 때가 많다. 나 역시 반성할 게 너무나 많다.


미련할 정도로 뒤척이다 결국 불을 켜고 일어나 읽다 만 책을 다시 집는다. 표지의 말을 빌려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인 '세상에 예쁜 것'이다. 


오늘은 박완서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팬으로서 고인의 책 위에 사인 한 번 받아볼 기회는 영영 사라졌지만,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 감싸 안아야 할 것들에 대해 대화한다. 

보고 싶다. 완서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