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봄봄

미라수 2013. 4. 6. 00:58








들풀 깔린 흙길은 사랑스러웠다.


바쁜 학기 중임에도 일부러 집에 내려가 가족들과 꽃구경을 다녀왔다. 구례서부터 하동의 화개장터까지 그림 같기만 한 꽃길을 느릿하게 달렸더랬다. 평일인데도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하기만 했던 쌍계사를 곧 떠나와 꽃길 따라 물길 따라 들어간 객 없는 구례의 어느 시골 마을은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온전히 마을 사람들만을 위한 보물 같은 곳이었다. 옆으로는 개나리꽃 만발한 하천이 있었고 하천과 마을을 구분하는 둑위엔 작은 벚나무들이 양 갈래로 늘어져 봄만이 낼 수 있는 풍경을 보이고 있었다. 어느 집에서 저리 부지런히 내어놓았는지, 찹쌀 가득 올려진 김부각은 봄바람에 설핏설핏 말라간다. 시절 만난 벌들은 만개한 벚꽃 사이를 요란하게 날아다니며 도대체 이 지천으로 널린 꽃 중에 어느 꽃에 앉아야 하는지 어찌할 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둑길 옆엔 수령이 백 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제법 웅장한 소나무 숲이 있었다. 차를 타고 왔음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셨던 할머니였지만, 언제부턴가 소나무숲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봄나물을 뜯고 계시는 모습이 영락없는 봄 처녀다. 당신 몸은 무너져만 가는데도 한 해를 거르지 않고 무엇이든 씨를 뿌리고 때가 되면 거둬야 직성이 풀리는 할머니의 밭 인생은 어딜 가나 끊이질 않는다. 봄 풍경 속의 엄마는 꽃처럼 예쁜 감탄을 연발하는 여전히 앳된 소녀였고 징글징글한 동생과 나는 온갖 민망한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바쁜 나날이지만 만사를 제처놓고 오길 참 잘했다. 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