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비가 좀 내렸어. 오랜 친구와 지나간 이야기를 하며 추억에 잠기다 헤어지고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 오는 길이었어. 문득 고갤 들어 새벽 밤 하늘을 보니 맑게 갠 하늘에 말간 별들이 총총 떠있는 거야. 여름의 끝자락과 함께 덜컥 찾아 들어온 가을의 문턱이었지만 분명 지난 겨울에 우리가 본 별들이 산자락에 걸려 있었지.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흘러왔던 거야. 얼굴을 조금 드러낸 겨울철의 별들을 보니 내 휴대폰 별자리 어플로 하늘을 들여다 보며 행복해 하던 당신의 그 모습이 떠올랐어. 그래. 무척이나 행복해 하던,, 별들을 보는,, 그보다 순수 할 수 없던 당신의 모습이었지.
바로 그날 난 당신에게 고백을 했어. 당신에겐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던 고백을 말야. 그리고 퇴짜를 맞았다. 그 뒤 한동안 주소록의 당신의 이름은 ‘퇴짜’ 였어. 이틀 뒤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이대로 끝인가,,를 수없이 고민을 하다 무턱대고 또 다시 당신을 보러 갔지. 서로 눈치보다 어렵게 다시 손을 잡고, 그리고 당신은 내게 입을 맞추었어. 난생 처음 느낀 그 부드러움과 두근거림은 아마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거짓말처럼 자연스럽게,, 당신과 나.
그렇게 시작됐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뭘 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게 천천히 찾아온 당신이란 첫사랑.
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호주를 가야겠다는 쉽지 않았던 결정을 포기할 수 있었음은, 오로지 당신 때문이었지. ‘너가 호주를 가지 않기로 했을 때부터 뭔가 잘못 된 것 같다.’라던 당신의 말. 아냐. 그렇지 않아. 당신을 택한 건 비록 길지 않게 살아오면서 내린 인생의 큰 결정들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결정이었어.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의 선택이야.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거든. 그 어떤 순간들 보다 설거지하는 날 뒤에서 당신이 말없이 안아줄 때,, 그래서 앞으로 이런 행복이 다시 찾아 올까? 사실 난 두렵기도 해.
어느 정도의 시기가 지났을 무렵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왔었어. 내 모습에서 당신은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지만 사실 난 두려웠던 거야. 지금껏 살면서 지켜왔던 신념과 가치관이 무너지면서 이게 과연 옳은 것인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자꾸만 맴돌아 어찌해야 할지 몰랐고 당신은 그런 내 마음에 크게 상처를 받았지. 그러던 어느 날, 울면서 당신이 전화했을 때. 내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을 때. 이 사람이야말로 내 인생을 걸어야 할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한순간에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져갔어. 그리고부터는 점점 더 당신이란 사람에게 빠져들었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내 마음과 달리 당신의 마음은 그 때부터 멀어간 것 같아. 그랬던 것 같아. 나는 어쩔 수 없는 첫사랑의 풋내기 같은 한계를 보이고 그렇게 우린 엇갈린 게지.
언제부턴가 당신이 나를 떠난 걸 알고서도 난 잠자코 기다렸어. 바보처럼 내게 다시 돌아오기만 바랐던 거야.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영화 속의 조제처럼 깔끔한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싶었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길을 걷다가 과거의 추억 때문에 눈물 한번 흘리고 마는 거지. 웃기게도 현실과 반쯤 동떨어져 사는 나는 그저 영화 같은 마지막을 그리고 있었던 거야.
아냐. 생각보다 꽤나 영화 같은 그런 여름이었어.
꿈을 꿨어. 긴긴 장마를 힘겹게 보내고 나서 다시 떠오른 해처럼 살아가려 했는데 갑자기 찾아온 폭우에 집에 물이 들어와 삼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물을 퍼내며 비만 그치길 기다리던 어느 새벽녘. 피곤에 지친 몸을 뉘었지만 야속한 당신 생각에 잠 못 이루다 잠깐 겨우 눈을 붙였는데 당신이 나왔어. 그리곤 내게 헤어지자 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우린 거짓말처럼 헤어졌지. 당신과 마시기로 했던 화이트 와인과 함께 우리의 마지막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아,, 만약에라도,, 만약에라도 그런 상황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웃으며 끝내보려 했는데,, 나의 그런 모습에 스스로도 놀랐는데 당신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참히 일그러진 당신의 얼굴,,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언제 울어 봤는지 기억도 안 나게 자라버렸는데,, 여자친구 사귀면 꼭 데려가겠다던 신촌의 아지트에 일년 만에 다시 홀로 들어가 귀청 떨어지게 흘러나오는 음악을 방패 삼아 목 놓아 울던 밤. 집 문제로 포기하려 했던 베트남을 도피처로 삼아 무질서한 거리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지.
홍콩 가면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을 너무너무 사주고 싶었어. 함께 길을 걸으며 당신이 눈길을 주었던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는 내 사정이 너무 원통하고 원통해 참고 참아 홍콩에서 죄다 사주고 싶었지. 하필 그 때 그곳을 왜 갔니. 그곳에 가지만 않았어도,, 전활 받고 그냥 뒤돌아만 왔어도 그녈 위해 조금이라도 무언가 더 해줄 수 있었는데 왜 참지 못했냐 이 바보 같은 놈아.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나도 알어. 그 때 그곳을 가게 된 것도 다 신의 뜻이겠지. 우린 운명이 아니었던 거야. 만남도 기적이고 헤어짐도 정해진 일이지. 미워하고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옛 생각에 웃기도 하는 내 모습은 당신을 쉽게 떠나 보내는 게 싫어 자꾸만 기억에서 꺼내고 무뎌질 만 하면 더더욱 당신과의 추억을 꺼내려 드는 것이 나의 미련임을 알 것 같아.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현명했던 사람아.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야. 당신은 여느 사람들과 분명히 다른 사람이야. 당신이란 사람은 너무나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임을 아는데, 나와의 만남이 그런 당신의 마음에 또 한 가닥의 상처를 낸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
이젠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 여전히 매일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주께서 예비하신 좋은 사람 만나 주님 안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붙잡아 달라고. 꼭 천국에서 볼 수 있도록 축복해 달라고.
딱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당신이 그렇게나 만들어 달랬던 우리들만의 블로그. 사실 이미 몇 달 전에 만들어 두었는데 이놈의 완벽 주의 때문에 결국 말해 주질 못했구나. 우리 블로그의 첫 장을 들춰보면서 이제 그만 놓아주련다.
처음
당신을 본 날.
예뻐서
그저 창문 밖의 풍경만을 쳐다 보았다.
2010.8.24
예뻐서
그저 창문 밖의 풍경만을 쳐다 보았다.
2010.8.24
작년 오늘로부터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일년.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안녕 사랑했던 사람아,,
당신과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안녕 사랑했던 사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