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나 기아, 아스날, 아니면 엘클라시코 더비 정도의 경기만 챙겨볼 뿐 TV를 일체 보지 않는다. TV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요. TV를 사야 하는 적절한 이유도 도무지 찾고 있질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에피소드는 죄다 인터넷 기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되거나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버스커버스컨지 울랄라세션인지도 지난주에 그들의 노랠 처음 들어봤다. 하도 기사에서 떠들어 대길래 기대를 좀 해서 그런지 기대만큼 어느 정도의 실망도 했지만… 암튼 하고자 하는 말은 TV의 필요성 고딴 게 아니라 며칠 전 위탄에서 이선희를 경악시킨 인지 뭔지 하는 기사의 헤드라인을 보고 클릭해서 누구야?하고 본 동영상의 주인공에 대한 것이다.
내 최고의 특기는 눈썰미가 아닌가 싶다. 코딱지만한 트위터의 프로필 사진만을 보고 지나가는 트친을 찾아 내질 않나. 지난 여름 한 30초 봤나 싶은 영원히 보고 싶지 않는 사람을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알아보질 않나. 최고 놀랐던 것은 3년하고도 반년 전쯤 306보충대에서 딱 3박 4일동안 취사장 앞에서 그저 우리 훈련병들의 줄을 세우던 일만 하던 조교를 우리 학교에서 찾아 냈던 일. 그 조교를 찾아 내고 난 후 심각하게 몽타주를 통한 범인 식별하는 직업을 고려하고 있다.
자꾸 말이 다른 쪽으로 이상하게 새는 건 나름 내 글의 매력이라고 생각. 죄송...
아무튼 지난주 방송에서 ‘나 항상 그대를’을 불러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그 남자. 이,성,현,(전국적인 유명세를 탔으니 이니셜 등으로 이름을 숨겨봐야…)
엇! 분명 어디서 봤는데?
그는 지난 학기 나와 철학 수업을 같이 들었던 철학과 학생이었다. 나는 범접도 할 수 없는 겁 없는 패션에 항상 솔직하고 자신감이 있는 친구였다. 나는 철학과가 아닌 타학과 학생이었고 철학적인 기본적 지식들이 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교수님이 따로 질문하지 않는 이상 늘 잠자코 수업만 듣고 있었지만,(대부분의 학생들도 그랬지만) 그는 조용하고 지루한 강의실의 침묵을 깨뜨리고 거리낌이 질문할 줄 아는 친구였다. 교수님은 자주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져주셨으나 늘 적막만 흐르기 일쑤였고 그럴 때면 늘 그에게 답을 구하곤 하셨다. 교수님은 그만의 독특한 사고와 자신감을 좋아하셨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마치고 교수님은 우리에게 미리 파이돈을 읽어 오라고 하셨지만 나를 포함하여 읽어온 학생은 거의 없었다. 아직 진도를 나가지 않은 시점에서 파이돈을 읽으며 무엇을 느꼈냐고 물어보셨으나 책을 읽지 않았으니 죄다 멀뚱한 책상만 바라보며 교수님의 시선을 피하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역시나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그에게 파이돈에 대해 물어보셨고 우리는 예상외의, 그러나 비겁하지 않은 그의 답변을 들었다. 교수님은 작정하고 20명이 조금 안 되는 전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지목해서 질문하셨고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은 책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표면적인 사실을 가지고 대충 얼버무릴 뿐이었다.
플라톤 어쩌고 저쩌고, 이데아 어쩌고 저쩌고 그런 내용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충 이렇게…
그러나 그 친구의 답변은 달랐다.
“교수님 정말 죄송합니다.”
“책을 안 읽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20여명의 학생 중 오직 이성현 그만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 때 그의 용기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나는 비겁한 추측만 내 놓았을 뿐이었다. 교수님께서 그걸 모르셨겠나. 그런 그가 이제는 TV까지 나와 전국민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거의 대부분의 기사는 그를 조롱하는 투로 몰아갔지만 나는 그 영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의 용기를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2주 전쯤 스무 살도 안 돼 보이는 아이들이 홍대 한복판에서 노랠 부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내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용기였다. 남자가 입은 스키니진의 실패를 뭐라고 하는 지 들어봤나? 바로 “브랄핏”이 란다. 난 저들에게서 스키니와 브랄핏 사이의 용기를 봤다. 기타로 절묘하게 가렼ㅋㅋㅋ
아무튼 말이다. 사랑도, 거리낌 없이 부르는 노래도, 패션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