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든 뉴질랜드든 어디든지 떠나기 위해선 부지런히 돈을 벌어야 하지만, 나는 ‘힘써’ 이원호선생을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기꺼이 알바를 포기하고 그에게 보드를 가르쳐 주기로 하였다. 작년에 보드를 같이 시작한 무리들이 어느새 에스자를 그리며 자연스럽게 타는 동안 이힘써선생은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설원 분야에서는 영 힘을 못쓰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는 그에게 일일 강습을 제안하였고, 당신만을 불러서 가르쳐 준다니 그는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힘써선생은 생초보인 본인 때문에 함께 동행한 이들이 어렵사리 찾아온 스키장에서 마음껏 스키나 보드를 즐기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하였고,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알아서 탈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스스로 무리에서 빠져 나왔었던가?(잘 모르겠닼) 아무튼 나는 이런 남을 배려하는 심성을 소유한 가식적인(ㅋ) 그를 좋아하기 때문에 쉬는 평일 하루, 날을 잡아 나의 놀이터 귀곡산장 베어스 타운엘 가자 했다.
내가 알기로 힘써선생이 보드를 탄 건, 작년의 두 번, 이후로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작년 두 번의 기억은 모로리 잊기로 한다. 생전 처음 타는 사람을 대하듯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고, 그도 응당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배우는 자의 더없이 훌륭한 마음자세였다) 고로 일단 합격! 사설기관이건 리조트건 강습자 한 사람이 보통 열댓 명을 앉혀놓고 초보자들을 가르치지만, 우리는 바로그들 옆에서 간지나게 일대일 강습을 보여준다. 그 큰 덩치의 힘써선생을 손수 잡아주고, 끌어주면서 시크하게 한마디 날려줬다. “옆에선 열명 앉혀놓고 한 사람이 가르쳐주는데, 여자도 아닌 남자를 이렇게 잡고 가르쳐주는 거 영광인 줄 알어.”
먼저 엉덩이와 무릎으로 넘어지는 것부터 시켰다. 그 다음엔 힐로 엣지를 주면서 멈추는 것과 그 반대로 몸이 슬롭 정상을 향해있을 때 토우엣지로 멈추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엣지로 어느 정도 잘 설 수 있으면, 이젠 낙엽을 할 차례. 정석으로 배우지 못한 많은 이들이 몸을 앞으로 향한 채 낙엽으로 잘 내려올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에 바로 턴을 시도하려 한다. 그럼 백 프로 넘어질 수 밖에 없다. 토우엣지를 주면서 아까와는 정반대로 몸이 슬롭 정상을 향한 채 낙엽을 하며 내려오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지 턴으로 넘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된 거다. 힘써선생, 오늘 꼭 턴까지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은데 과연…?
서너 시간 뒤쯤 이힘써선생은 결국 턴을 성공하고야 말았다. 누구야? 힘써선생의 운동신경과 겁을 운운한 사람이… (어딜 쳐다봐. 임꼬마형 당신 말야!!)
힘써'이원호선생과 임꼬마형
자세도 나쁘지 않았다. 엉덩이도 빠지지 않고 조금이나마 은연중에 무릎도 굽힌다. 가르친 내가 어찌나 뿌듯하던지… 처음으로 에스를 그리고 슬롭을 내려온 후 우리는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서태웅처럼 멋떡들어지게 서로의 손을 후려쳤다.
보드를 타건 스키를 타건 누구든지 처음엔 본인의 의지와는 달리 이리 저리로 미끄러지고 넘어지고야 마는 설원 위를 두려워한다. 본인 딴에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엉덩이를 뒤로 빼지만, 오히려 엉덩이를 빼는 행위가 넘어지는 지름길임을 알지 못한다. 아니다. 초등학생도 알 그 원리를 다 큰 사람이 모를 리가 있는가? 분명 모르는 건 아닌데, 처음 보드를 접하는 사람은 신기할 정도로 누구나 바보가 되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힘써선생에게 시종일관 강조한 것 두 가지는 엉덩이를 뒤로 빼지 말라는 것과 넘어져도 보호대덕에 절대 아프지 않으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무조건 상체를 천천히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작년, 보드를 처음 배웠을 때, 정말 많이 넘어지면서 스스로 가장 크게 문제 삼았던 점은 여유가 부족했다는 것. 천천히 턴에 돌입을 하는 순간 직활강이 되며 속도가 빨라지는데 그 때 절대로 쫄지 말고 상체를 천천히 돌려줘야 한다. 갑자기 빨라진 속도에 겁을 먹어 상체를 급하게 돌리거나 소위 말하는 뒷발을 차다가 꽈당! 또 꽈당!! 보호대도 없이 심하게 꽈당하고 넘어져 엉덩이나 무릎을 다치면 그 때부턴 넘어지는 것이 세 배, 네 배로 두려워 자세가 무너지고 만다. 그러면 그날의 보딩은 끝이나 다름 없다.
그렇지만 힘써선생이 에스자를 그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남의 시선을 상관하지 않고 배운 대로 두 팔을 크게 펼치고 보딩을 했다는 것.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본인 스스로 괜히 쪽팔려 두 팔을 드는 둥 마는 둥 소극적으로 움직이면, 턴을 하기 훨씬 어려워진다. 어디 보드뿐이겠는가? 어느 일을 처음 시작함에 있어 서툰 모습이 부끄럽다고, 창피하다고 대충 하려 하면 뭐든지 잘 해낼 수가 없는 거 알잖아. 다방면으로 실력이 출중하든, 운동신경이 좋든, 외모가 잘생기거나 예쁘든, 머리가 좋든지 센스가 뛰어나다고 해도 무슨 일이든지 처음엔(물론 나중에도)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나는 썩은 복숭아 색깔로 참혹하게 부어 오른 엉덩이를 몸소 체험해야만 했었다.
어린 동생 말을 잘 따라준 형에게 고마웠다. 점심도 형이 사줬는데 보딩을 마치고 다른 지점보다 훨씬 비싼 베어스 KFC에서 햄버거 사줘… 이 형 돈도 쥐꼬리만큼 벌면서. 떡볶이나 먹으며 좀 아끼자니깐. 그리고 그 무엇보다 뿌듯했던 건 내 보딩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온종일 붙어 다니며 가르쳐주는데 집중한 자신.(내가 생각해도 나름 참 성실하고 꼼꼼하게 가르쳐줬닼) 이제 보드를 가르쳐줄여친만 있으면 되는 건가? 가르쳐 주면서 안 싸울 자신 있거든!! 정말로…ㅋㅋ
지난해 여름, 수해를 당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주었던 힘써 이원호선생. 그 때의 고마움을 오늘의 에스자 턴 전수로 퉁친다.
뙇!!!(퉁치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