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피곤하긴 피곤했을 거야. 오늘도 어떤 정신인지 모르게 겨우 출근을 하고서 독한놈이란 소리까지 들었으니.
네 시에 퇴근을 하고 볼일이 있어 잠깐 학교엘 갔었다. 새 학기의 두근거림과 긴장과 활기를 한 몸으로 느끼며 책을 반납하기 위해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책을 반납하고서 으레 찾는 꼭대기 층의 정기간행물실에 들어가 나만의 작은 공간인 창가 옆 소파에 앉았다. 습관처럼 집어든 것은 내셔널지오그래픽 1,2,3월호. 방학기간동안 잡지 한권 제대로 읽을 틈이 없던 것인지 게으름인지. 반성과 기대를 품은 채 푸근한 소파에 온 몸을 기대어 앉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책은 펼쳐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여덟시가 넘어있었고 잠깐 강정 반대 집회를 한다는 청계천을 들려볼까 하다가 몸이 무너져 내리는지라 안 되겠다싶어 곧장 집으로 향했다. 도서관 문을 나오는데 하늘만 보이더라. 앞으로는 밝은 목성과 금성이 뒤로는 보름달이 밤안개에 아른거리는 빛을 내던 그 몽환적인 풍경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새벽부터 강정의 구럼비를 폭파한다는 소식에 어두웠던 마음. 오후에 기어코 몇 차례의 폭파를 시작해 무너져버린 마음이 다시 슬프게 다가옴은 바라보는 밤하늘 풍경이 아름다워서였을까? 하긴 달도, 화성도 못 잡아먹어 안달난 사람들인데 고작 검은 바윗덩어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
난 여러 가지 이유에서 우리학교가 참 싫었고 지금도 좋아하는 마음이 추호도 없다. 그러나 유일하게 사랑하는 것이 있었으니 학교 언덕에서 정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살피재라 불리는 언덕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달동네가 있었다. 골목 구석구석이 보일정도로 가깝게 느껴지면서도 때론 그곳이 다른 세상 같아 굉장히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늘 해는 그 너머로 졌다. 학교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올라가 사진기 속에 저무는 해를 잡으려 해도 늘 그 언덕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맞은편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더 넓고 먼 곳의 노을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살피재 뒤로 해가 넘어간 후에 만들어지는 나무들의 실루엣도 좋았으니 재수시절 같았으면 무턱대고 땀 뻘뻘 흘리며 맞은편 언덕으로 올라갔었을 테지만 이제는 학교에서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이미 1학년 때부터 그곳의 작은 집들을 하나하나 파헤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하고 보니 타워크레인이 자리를 잡고 아파트를 조금씩 지어 올리더라. 조금씩 높아지는 아파트들은 결국 언덕 꼭대기의 나무들을 가려버렸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났다. 겨울 방학을 정신없이 보내고 오랜만에 학교엘 가보니 타워크레인은 없었고 대신 앙상한 콘크리트벽의 닭장 같은 아파트들이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언덕풍경이 사라졌다. 더 이상 학교에서 사랑할만한 게 없다.
주거 공간? 좋지. 안보? 정말 중요하지. 경제 발전? 그래 좋다. 하지만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수많은 사람을 체포하고 배를 뒤엎으면서까지 폭발시켜야하나? 왜 꼭 제주도의 그곳이여만 하나. 진해의 해군기지에 있던 친구가 그랬다. 아마 그 바다에 페인트 가루만 몇 미터는 족히 쌓였을 거라고. 자신이 그곳에서 한 대부분의 일은 검열을 위한 페인트칠이었단다. 구럼비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바위란다. 그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세계적인 바위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맑은 제주도의 바닷물은 얼마나 오염이 될까?
FTA도 그렇지만 강정 해군기지문제 역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인지 난 잘 모르겠다. 이쪽의 주장도 저쪽의 주장도 서로 일리가 있는 것 같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상대편에 대해 하도 왜곡하다 보니 이제는 그 어느 쪽의 정보도 신뢰가 잘 안 간다. 늘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쪽은 더욱 믿기 힘들다. 4대강이나 FTA등 명박정권이 일을 처리 하는 방법은 늘 힘에 의한 것이었으니 이제는 그냥 반발심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난 그냥 아름다운 자연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그 풍경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사람이다. 조금 불편하면 어때. 조금 가난하면 어때. 어떤 이유에서건 결국은 욕심에 의해서 저 아름다운 자연을 막무가내로 파괴시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결국은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고 돈에 눈이 먼 욕심 아닌가.
제발 좀 가만히 내버려둬. 제발. 그렇지 않으면 납득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