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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Le Havre // 자극에 대하여








어느 때부턴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극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극적으로 (그것도 빠른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영화, 드라마의 줄거리도, TV 속 배우들과 가로수길을 도도하게 걸어 다니는 젊은이들의 의상도, 그림, 음악 등 소위 예술이라 불리는 것들에도 '자극적인' 무엇인가가 느껴지지 않으면 놀랍게도 '시시한 것'으로 전락하기도 하는데 심지어 먹는 음식들까지 미친 듯이 맵거나 달아야 주목을 받으니 슬그머니 헷갈리기 시작한다.

시각이든 후각이든 어떤 감각이 됐든 자극적인 것들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자극물들의 습관적인 노출로 점점 '자극'의 기능을 상실해 가는 인지적 변화는 분명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문제인 것 같다. 자극에서 무뎌진다는 건 곧 감성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자극적인 것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가는 과정들이 필요한데 떠들썩하지 않은 여행이나 손으로 쓰는 편지, 고전 음악, 소금 간 안 된 삼치구이 같은 것들은 왠지 소박하지만 나름 효과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지난 주말에 본 영화 '르 아브르'가 그랬다. 할리우드식의 긴장감이라곤 찾을 수 없이 조용하고 따뜻하기만 한 이 영화는 '르 아브르'라는 실제 프랑스 북부의 작은 도시만큼이나 단조로웠고 극 중 동네 이웃들만큼이나 친절한 영화다. 오래전 영화인 것 같은 구식 미장센의 회귀를 통해 감독은 자극적인 소재에 지친 관객들을 배려해준다.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나 표현하려는 따뜻함을 차치하고서라도 인물들의 적막한 대사와 흐트러짐 없는 색채의 구성은 영감님의 낡은 자켓처럼 그저 편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