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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평화









둘 다 서울에 있다 보니 오히려 소홀해져 매우 오랜 시간 뜸을 들이며 만나곤 하지만, 그럼에도 늘 편한 친구 평화와는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 알게 됐다. 입학식 날, 우리는 반 배치를 받고 운동장에서 자기 반이 표시된 팻말을 찾아 그 앞에 두 줄로 앉아 있었고 초등학교 동창들과 같은 반이 된 녀석들이나 끼리끼리 모여 잡담을 나눴지 대부분은 어색하게 땅만 보고 있었다. 그 어색함 속에 등장한 녀석의 모습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렬하다 못해 무시무시하게 남아있다. 오리걸음으로 돌아다니면서 "안녕, 난 평화라고 해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고 나를 포함한 어중이떠중이들을 당황하게 하며 반강제적으로 악수를 받아낸 무섭고도 느끼하게 생겼던 평화라는 종족이 어린 내겐 참 희한하게 보였다.

신앙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때문에 보통의 친구들과는 또 다를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녀석은 내 음악관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내가 S.E.S. 유진의 팬카페를 만든 중딩 시절 녀석은 자우림에 열광했고 노래방에선 스트라이퍼의 To Hell with the Devil을 고래고래 불러대곤 했다. 두껍고 매우 짧은 하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얼마나 날랜지 코딱지만 한 동네 학원에선 아이들과 심지어 원장님까지 세워두고 외발차기를 하기 일쑤였고, 농구공만 잡으면 그야말로 불스가 따로 없었다. 남들 스타나 디아블로를 할 때 녀석은 늘 레인보우식스만 해댔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그의 아이디는 dansokorea였다. 한국 전통 악기 단소 말이다. 그 뜻에 대해서 뭐라 뭐라 자기 나름대로 장황하게 설명했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신대원생인 녀석의 기숙사 방은 역시 책으로 가득했다. 그제부터 읽고 있는 책 '순전한 기독교'는 녀석이 내게 억지로 떠밀어 준 것이었고 그에 대해 참 감사하게 생각하며 읽고 있다.


꽤 자란 어느 때부터 나는 그 앞에서 자주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게 바로 둘도 없는 친구라고 여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