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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고래









어린 시절의 내겐 '그러나 지금은 고래가 있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까마득한 날 땅과 바다를 군림했던 공룡들까지도 압도할 수 있는 크기를 자랑하는 흰긴수염고래가 인간의 세상에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이 자못 우쭐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펠레와 마라도나의 세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메시와 호날두의 세대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요즘 젊은이들의 그것과 비슷하다랄까?


고래를 유독 좋아했다. 아빠와 나, 동생이 늘 빼놓지 않고 보았던 프로그램은 '밥 아저씨의 그림을 그립시다'와 '동물의 왕국'이었고 동물의 왕국 중에서도 가장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고래에 관한 것이었다.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바닷속은 지금도 두려운 곳이지만 고래만 보였다 하면 안도하곤 했음이 그 커다란 몸뚱이로 보는 이의 두려움까지 품어버리는 것이 틀림없다.

상어의 검은 눈동자는 살기로 가득하고 다랑어의 눈은 생각 없이 흐리멍텅하지만 고래의 깊은 눈은 선하기만 하다. 수많은 책의 삽화에서, 음반의 자켓에서 고래가 그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눈 때문이다. 고래를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는 가장 큰 이유도 심연을 담고 있는 눈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바닥을 알 수 없는 검은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는 고래의 몸짓은 이 세상 어떠한 생명체도 가지지 못하는 여유로움과 기품이 있다. 바다를 가진 존재가 그들의 영역에서 방정맞게 움직일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래의 여정은 매우 느리고도 한없이 길다. 고래의 침묵은 곧 심해의 정적과 닮았다. 그러나 또한 고래는 매우 아름다운 소리로 대화하고 노래할 줄도 아는 생물인데 때론 인간에게도 말을 건네니 영특하기 그지없는 생명이다.

고래는 몸집만 큰 게 아니라 마음도 넓어서 따개비들이 평생을 몸에 붙어살게 내버려 두고 상어 떼들이 배에 붙어 다니며 기생을 해도 본체만체해버린다. 게다가 집채만 한 수염고래들이 먹는 음식이라곤 겨우 사람의 손가락만 한 새우들이니 수많은 생물을 위한 배려라 봐도 좋을듯하다.

고래는 젖을 먹이는 동물이다. 어미가 자식에게 젖을 먹이는 가장 원초적이며 따뜻한 사랑의 실천을 고래는 몸소 행하고 있다.

물론 고래라고 예외가 없을 수는 없다. 예외는 모든 생물이 가진 공통점 아니던가? 몸의 삼 분의 일이 머리인 향유고래는 더 이상의 적을 찾을 수 없는 강한 이빨과 힘을 가지고 있다. 머리의 거대한 흰 반점과 등 위로 길게 솟은 검은 지느러미만으로 보는 이에게 공포감을 주는 범고래의 물개 사냥은 잔인한 학살에 가깝다. 이러한 고래의 힘도 신비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 고래는 평화의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고래를 동경했던 나는 비로소 작년에서야 바다를 유영하는 고래를 직접 볼 기회를 얻었다. 물 위로 튀어 오르는 거대한 몸체를 본 건 서호주의 인도양이었고 정오가 거의 다 돼갈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래와 마주한 순간엔 탄성을 지르되 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고 동시에 전율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고래는 경이의 대상이 아닌 경외의 존재임을 그 이후에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