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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신발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장 유심히 살펴보는 의복은 바로 신발이다. 지면을 수십만 번 디디며 닳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신발은 그 사람에 대한 가장 거짓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외양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니지만, 다행스러운 점은 신발을 통해서 주로 그 사람의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물론 예외는 있다.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사람일지라도 명품 로고로 도배된 신발은 비싼 값에 비례하는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요, 심지어 스타일로도 꽝이기 때문에 그런 신발을 고집하는 것은 허세 또는 정말 패션 감각이 떨어진다고밖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구찌 스니커즈는 정말 최악이다.) 진정한 명품은 드러나는 로고 없이도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해야 한다. 집안 사정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고등학생임에도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프라다 신발을 신고 다니는 모습을 봐도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그러나 비단 신발 한 켤레의 값이 기백만 원이라 할지라도 최상의 재료를 가지고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든 장인의 짙은 브라운 구두를 마주한 순간 신발 주인의 안목과 고전적인 스타일의 멋을 칭찬할 수밖에 없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구두를 신고 가지런히 백발을 정리한 노신사는 늘 염원하는 노년의 로망이다. 아기 천사의 눈물처럼 새하얀 운동화를 시간이 날 때마다 닦고 있는 남학생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순수해 보이지 않는가? 누군가 실수로라도 그 신발을 밟으면 사달이 나겠지만 일단 그런 결말은 일단 상상하지 말자. 붉은 밑창과 가늘게 그러나 매우 튼튼히 세워진 힐은 여성의 관능미를 한껏 높여주며, 모든 게 형광으로 이루어진 운동화는 개성에 대한 젊은이의 거리낌 없는 자신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런닝화나 등산화 등 용도에 맞는 신발을 꼬박 챙기는 이의 모습에서는 부지런함이나 꼼꼼한 성격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또한 그런 문화에 구애받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아무런 신발을 집어 신고 나온 이들에게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고리타분한 격식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한 브랜드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또 어떤가? 스티브 잡스의 뉴발란스는 그를 상징하는 또 다른 아이콘이었다. 나이키 조던만을 사모으는 사람이 수집하는 신발에 대해 가지는 가치를 나는 느낄 수는 없지만, 괜히 그 사람의 집착과 열정이 부러울 때가 있다. 콜드플레이의 'Yellow'를 좋아하고 힐보다는 편안한 플렛슈즈를 즐겨 신는 여자를 알고 있다. 그녀에게선 언제든 내키는 대로 떠날 수 있는 바람의 냄새가 난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이 걸어온 여정이나 즐기는 방식을 알 수 있다는 말은 사실임이 틀림없다. 코엑스 한복판에서 황토를 묻힌 채로 돌아다니던 꼬마의 신발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흙길 위를 뛰는 느낌을 제대로 알 리 없는 도시의 아이들과는 달리 시골에서 뛰어놀며 자라고 있는 그의 어린 시절이 참 귀하다 생각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발은 구두코가 벗겨진 여성의 구두이다. 그 하나만으로 호감을 느끼고 있던 상대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