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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안녕, 2013







하루는 길지만 1년은 짧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 없는 요 며칠. 분명 십, 이십 년 전에는 그 반대로 느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선물을 주고받고 그렇게 하지 못한 이들에겐 꼬박꼬박 안부 문자를 보내다 문득 드는 생각. 어쩌면 신은 우리의 사소하고도 귀중한 관계를 위해 '마지막 날'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올 한해 나는 또다시 새로운 것들에 뛰어들었고 낡은 것들을 멀리하려 했으며 여러 친구를 사귀었고 시든 인연은 과감히 포기하기도 했다. 살은 조금 빠졌고 기삿거리는 되도록 멀리했지만, 외모나 사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잔소리의 난무에도 불구하고 머리와 수염은 길도록 내버려 두었다. 대학의 모든 과정을 마쳤으니 '아직 학생인데요?'라는 최후의 방패 같은 변명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신이 나게 즐기던 프로야구는 이해하기 힘든 기아의 추락과 함께 쳐다도 안 보게 되었고 외질의 가세와 여러 포텐의 효과로 (아직은 위태롭지만)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아스널의 경기는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 보고 있다. 주말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나를 위한 쇼핑은 일절 하지 않았고 오로지 카메라 장비들을 사 모으는 데 주력했더니 벌려놓은 게 아까워서라도 일단은 몇 년 더 사진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은 사진을 찍으면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꽤 근사하고 내 성향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상수 어느 골목의 (그 누구도 데려가지 않는)아지트를 마련하고 매주 한 번씩은 들락거리고 있고 늦봄엔 오페라를 보다 무대 위의 구여친을 보고 나의 미칠듯한 눈썰미를 저주하기도 했다. 여느해보다 공연장을 자주 찾았던 해였는데 (연애를 하지 않으니 이때다 싶어 줄기차게 다녔던 거다) 단연 최고는 키스 자렛의 공연이었다. 크게 기억 남는 건 이정도. 아! 그리고 오랜 지인을 보기 위해 중국엘 다녀왔었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야시장에 앉아 마신 미지근한 맥주와 양꼬치는 꽤 근사한 추억으로 남으리라..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최대한 말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새해에는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뭐 하나라도 아는척하지 못해, 자랑하지 못해 머리털 한 가닥 한 가닥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하는 나라서 과연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지킬 수 있는 목표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