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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Cafe Stockholm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장소가 있다.

상수동 336-16번지, 카페 스톡홀름이 바로 그곳이다.


2년 전,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서 나만의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서너 달을 이 카페 저 카페로 돌아다녔었다. 보라색 페인트로 칠해진 상수동의 스톡홀름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작은 공간에 홀로 들어서기까지는.. 용기, 희한하게도 왠지 모를 용기가 필요했다.

가볼까? 하고 몇 번을 문 앞에서 돌아섰는지... 왜 그랬을까? 몇 달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내밀한 공간을 찾기 위한 기준이 있었다. 다른 메뉴는 크게 상관없지만 커피는 맛있어야 한다. 조용해야 한다. 큰 창이 있어야 하고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카페 안의 음악이 좋아야 한다.


작년 5월 5일의 일기에는 처음으로 스톡에 가서 마신 사이폰 방식으로 내린 커피에 대해 아주 간략한 소감 한 줄이 적혀 있다. '부드럽고 맛있다.' 그야말로 커피 맛은 코빼기로도 모르는 사람의 평가답기도 하지만, 분명 근처 카페의 기계에서 막 뽑아내는 커피와는 다른 맛이 있다. 술이며 커피며 신맛이 강한 것은 싫어하나 스톡의 사이폰 커피는 신맛이 굉장히 부드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 놀라곤 했다. 그리고 나만의 오해인지도 모르겠으나 사장님은 꼭 내 커피엔 아낌없이 커피콩을 갈아주시곤 해서 물 탄 아메리카노라도 맛과 향이 참 깊었다. 내 오해겠지? 그렇겠지? 


사실 사장님은 늘 먹을만한 무엇이 있으면 카페를 찾은 손님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곤 했다. 커피에 곁들인 수박, 바나나, 딸기, 블루베리라니. 가끔 조합이 재밌기도 했지만,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선물로 받았거나 직접 만든 초콜릿, 쿠키는 모아다가 커피 받침 위에 하나씩 놓아주기도 했고 가끔은 실험적인 음식을 반 강제로(?) 먹이고 평을 받기도 했다. 요상한 음식을 먹은 후의 당혹스러움을 잘 숨기지 못하는 나의 표정은 그녀의 요리 실험에 꽤 도움이 됐으리라.


힘든 주말 일을 마치고 조용한 쉼이 필요한 월요일이면 간절한 마음으로 스톡을 찾곤 했는데 도대체가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럴 때면 가끔은 맞은편의 이리카페나 혹은 다른 카페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발길을 돌려 집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만큼 내겐 스톡이 아니면 쉼터로써의 의미가 없었다. 오픈 여부에 대한 퍼즐 조각 같은 단서를 위해 스톡홀름의 트위터를 팔로우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는데 효과가 꼭 없는 건 아니었다. 고마운 사장님은 아예 스톡의 오픈 여부를 미리 알려주시기도 했는데 꼭 매일 찾는 것도 아니라 그러한 호의가 미안해 사장님의 알림 서비스를 마다하기도 했다. 


지난봄부터는 나만의 일을 하기 시작하여 스톡에서 여유롭게 쉬기보다는 노트북을 가지고 소일거리에 매진했지만, 그전까진 주로 일기를 쓰고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곤 했다. 스톡의 음악이 좋아 휴대폰에 담긴 음악을 들었던 적은 거의 없다. 자주 지금 카페에 흐르는 곡, 앨범에 관해 묻곤 했고 그때마다 성실히 답을 해주던 사장님은 언제나 부탁을 하면 흔쾌히 내가 원하는 음악을 틀어 주시곤 했다.


스톡홀름 창밖으로 보이는 상수동의 풍경은 여느 카페 거리와는 확연히 다른 매력이 있다. 다소 낡은 주택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인지 오후가 되면 유치원에 간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의 주름 깊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개성 있는 음식점, 카페들 사이사이에는 촌스러운 방앗간, 컴퓨터 세탁소가 있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거나 밉상스럽지 않다. 뱃살과 함께 늘어진 메리야스만 입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저씨, 배고픈 인디 뮤지션과 담배를 놓을 줄 모르는 시인은 상수동 골목을 드문드문 채우고 있었고 여전히 혼자만의 삶을 즐기고 있는 중년의 건축가는 상수동 골목 골목을 산책하다 스톡에 들려 함께 걷던 애완견의 목을 축이게 했다. 꾸밈없는 거리의 풍경이 좋았다.


사장님껜 꽤 미안하다. 작년부터 스톡홀름에 대한 글 좀 써서 홍보에 작은 도움이라도 드려야지 했는데 나의 게으름은 몇 계절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 버렸고 이제는 홍보라는 게 무색해져 버렸다.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던 이곳이지만, 꼭 한 번 데려오고픈 사람이 두어 명쯤 있었는데 이제는 영영 데려올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스톡처럼 많이 간 카페가, 아끼는 공간이 없었다. 비 내리는 날의 스톡 창가처럼 좋은 자리가 없었다. 스톡의 작은 것 하나하나를 애정어린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 짐을 싸는 사장님 앞에서 차마 나의 아쉬움을 표현할 순 없었다.

6월의 어느 날, 카페 스톡홀름의 간판이 내려왔고 나는 그 위에 수국 여섯 송이를 남겨두고 나왔다.

 





































































































내겐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장소가 있었다.

상수동 336-16번지에 있었던 카페 스톡홀름이 바로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