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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녀가 달린 이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큰 영광이자 행운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만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나 역시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몇 시간이고 앉아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게 말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인듯하다. 나는 좀처럼 내 흥미를 끌지 못하는 사람이나 소재 등에 대해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반드시 생산적인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과의 적당한 간극 유지가 중요한데 그것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대화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핵심이라 믿는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이야기 혹은 대화에 관한 것이 아닌, '달리는 이유'에 관한 것이다. 나는 최근 꽤 지적이고 유능한 분을 알게 되었고 몇 차례 만나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풍의 영향으로 악마 같은 비가 잠시 휘몰아친 어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그녀는 곧 유럽으로 떠난다 하였는데 아직 주제를 못 찾았다고 말했고 나는 네덜란드로 고흐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리를 바꿔가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 우연과 운명에 관한 생각, 주거 공간에 대하여, 또 빨래를 하고 너는 방법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다 헤어졌다. 


집에 잘 들어갔다는 의례적인 문자를 받은 것은 한참 후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는데, 내용인즉슨 한껏 달리다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 밤중에. 낮에도 분명 운동을 했다고 들었는데 또 달렸다니.. 함께 먹은 저녁의 칼로리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특이하게도 배추가 올려진 꽤 식물적이었던 피자가 그 이유였을까? 아니다. 자정의 달리기는 뭔가 더 특별해야 한다.

일 년 중 지구와 가장 가까이에 달이 뜬 밤이었음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그 이유가 수긍이 된다. '슈퍼문이 뜬 날 밤. 나는 달리고 달리기만 했다.'라는 일기장의 한 줄은 나 같은 감성팔이에겐 꽤 매혹적인 여운으로 다가오는 구절이기 때문이다.(나는 정말 멍청하게도 일기의 한 줄을 위해 어떤 무의미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것은 병일지도 모른다.)


냉정히 따졌을 때 평균 조금 이하의 운동 신경을 가지고 있는 나는 늘 여섯이서 달렸던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매번 네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곤 했으며 그때마다 나보다 느린 두 명이 있다는 사실을 더 기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투쟁심 없는 아이였다. 

호텔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친 듯이 바쁘고 피로가 극에 달하는 순간 오히려 구둣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힘든 순간의 달리기가 얼마나 흥미롭고 벅찬 뿌듯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리라. 아드레날린의 실제적인 작용에 대해서 몸소 느낀 것은 호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달리기의 희열을 맛보면서였다.(이런 생화학적인 기분을 위해서는 어떤 뿌듯함이나 성취감이 동반되어야 한다.)

곧게 뻗은 아스팔트 길만 보면 연인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를 즐기는 괴상한 형이 있다. 나는 그것을 '아스팔트 러브'라 불렀고 나 역시 한 번은 키득거리며 연인의 손을 잡고 냅다 뛴 적이 있다. 좋더라. 누구의 손을 잡고 영원할 것처럼 달리는 즐거움을 알기 위해선 약간의 괴상한 용기가 필요하다. 

달리기는 이렇게 흥이나 사랑의 감정을 듬뿍 끌어올리기도 하는 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떤(주로 아픈, 슬픈) 기억을 애써 죽이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중경삼림의 금성무가 그랬다. 잊기 위해 도시를 있는 힘껏 달렸다. 무조건 달렸고 끝까지 달렸다. 그리곤 참 미련스럽고 억척스럽게 유통기한 꽉 찬 파인애플 통조림 30캔을 먹어치우는데 잊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거 못 먹을 게 없고 죽도록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노릇 아닌가?(미련스럽다는 표현을 했지만, 매번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어치우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곤 한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충분히 무모해도 좋은 것일 테다.)


유능한 그녀이기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선뜻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속을 달래보려 달린 것일 수도 있고 잊을만하면 밀물처럼 쓸려 오는 고독함을 견뎌보려 달린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로 영롱하게 비치던 달빛을 아쉬워하는 마음에 달렸을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떠나려 하는 목적이나 어떤 주제를 꼭 먼저 찾아야 할 필요는 없. 달려야 하는 이유가 꼭 정해져 있어야만 하는가? 진짜 중요한 건 동기가 아니라 달리는 행위의 실천, 그 자체에 있다.

달렸으니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