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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Bon Jovi













꿈꾸고 동경하는 나만의 벨에포크는 결코 체험할 수 없었던 80년대다. 영화나 드라마 등의 화면에서 비치는 80년대의 모든 촌스러움을 사랑했다. 이를테면 디스코장 로라장과 편지로 전하는 촌스러운 고백 같은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즐겨 듣는 음악들이 온통 그 시절에 뭉쳐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본조비를 가장 아끼는 가수로 손꼽는 이유는 바로 그 음악들을 최초로 접할 수 있게끔 연결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쏟아져 나온 긴 머리와 곱상한 외모의 헤어메탈(LA메탈 혹은 팝메탈로도 불리는) 음악들은 적당히 대중적이고 락이라는 장르가 지니고 있는 폭발적인 사운드도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친숙하게 다가가기 좋았다. 


Dream Theater의 전집을 구매하기 전까진 언제나 본조비의 음반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 노래방엘 가면 본조비 노래 하나는 꼭 부르고 나와야 했고 본조비가 95년 웸블리 공연 때 입은 청자켓을 팬들과 주문 제작해 입기도 했다.(세상에 그 촌스러운 청자켓을 지난밤 공연 때 입고온 사람을 봤다. 어찌나 반갑던지)

언젠가는 미국이나 일본(우리나라엔 20년 전 고작 한 번 왔지만, 일본에서만 서른 번 이상의 공연을 했다)으로 본조비의 공연을 보러 갈 테고 이미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나빠진 그의 가창력 때문에 아예 한국에 안 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나이 먹고 실력 떨어지니 외국 투어 돌면서 돈만 벌고 간다는 욕을 듣고 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다 떠나서 한국에서의 앨범, 음원 판매가 바닥이니 내한에 대한 기대 자체를 접은 지 꽤 오래됐었다.


그러나 드디어 어젯밤 반평생을 기다려온(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시기적으로 그쯤 된다) 본조비를 보고 말았다. 그는 여전히 쫙 달라붙는 가죽 바지를 입고 무대를 누비벼 특유의 몸짓을 선보이는데 이 풍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거다. 예견된 히트곡들을 차례로 불렀는데 중간중간 한국팬 특유의 열광에 적잖이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이미 네다섯 곡의 앵콜곡을 부르고 퇴장했지만, 팬들의 외침에 그는 다시 한 번 무대 위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부른 Always. 

Always는 올해 열린 본조비 공연 중 처음으로 부른 것이었다.(가창력이 떨어지고 난 후 웬만해서는 부르지 않는 곡이 되어버렸다) 어찌나 팬들이 극성으로 "올웨이즈"를 외쳤는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나와서 불러주었으니 팬의 입장에서는 이런 감동이 없다. 이제는 Always를 제대로 소화할 수 없는 그의 목 상태지만, 팬들이 한목소리로 대신 불러주는 모습이 감동적이기도 하고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는 마이크를 멀리하며 쓴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가 애석하면서 고맙기도 하고. 

한 가지 크게 아쉬운 점이라면, 역시 리치 샘보라의 부재였다.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더블넥 기타를 매고 Wanted dead or alive를 연주하는 리치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언제까지나 함께 한다는 것은 왜 이리도 어렵나. 본조비만큼은 맴버 간 불화 없이 계속 갈 거라 믿었건만..

 

여심을 흔들었던 금발의 머리는 짧은 은발이 되어 있었고 이제는 그를 있게 해준 과거의 히트곡들을 힘들어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우리도 다 같이 나이 들어버려 세월의 무게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와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행복하다.

그저 롤링 스톤즈 영감들처럼 그저 오래오래 무대 위를 지켜만 주시라. 힘이 부쳐도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팬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