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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여름


꽤 영화 같았던 여름이었다. 긴 장마철에 반지하인 내 집은 군데군데 곰팡이가 슬었고 벽지엔 물이 스몄다. 장마가 끝났다. 누렇게 물이 먹은 벽지는 정말 거짓말처럼 단 하루 만에 한여름의 햇살에 말라버렸고, 곰팡이도 더 이상 피어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와 난 눅눅했다. 여름과 함께 찾아온 소원함이었다. 



7월 26일. 장마 때 보다 더욱 많은 비가 한번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때가 화요일이었나,, 알바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비가 오든 말든 걱정 없이 집에서 느긋하게 KIA와 삼성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저녁 9시쯤, 8회였던가 9회였던가 기아의 위태로운 리드였다. 경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올라온 한기주가 역전 쓰리런을 얻어 맞는 그 순간 방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덜컥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야구에 열중한데다 장대비소리가 너무 커서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던 것. 깜짝 놀라 방문객을 쳐다보니 옆집 아저씨와 윗집에 사시는 주인 할머니였다. 
 

“그래도 이 집은 현관만 들어와 괜찮네.”
 

“네?”
 

“자네 현관에 물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으니 한번씩 물 빼줘.” “우리 집은 안방까지 물이 차오르고 난리 났어.”
 

과연 5cm가량 낮은 현관을 보니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물이 어느 정도 차있었고 그 위를 슬리퍼들이 종이배마냥 둥둥 떠 있었다. 옆집은 안방에서 물이 차올라 비가 계속 오는 한 수습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렇게 한기주가 역전 홈런을 맞으면서 여름의 악몽은 시작됐다. 

현관으로만 들어오던 물은 그 이튿날 옆집 내외가 밤새 물을 빼내느라 너무 지친 나머지 다 포기하고 집을 나가면서 내 방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큰방과 옆집 큰방 사이의 벽에 아주 작은 틈이 있었는데 그 바늘구멍 같은 틈새 사이로 물이 졸졸졸 들어오는 것을 볼 때의 절망감은 직접 보지 않으면 모른다. 옆집에서 더 이상 빗물을 빼지 않으니 옆집의 큰 방엔 점점 물이 차오르고 그렇게 차오르던 물이 틈새를 만나 내 방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현관에만 물이 들어와 한두 시간 마다 한번씩 빼주면 그만이었기에 오히려 며칠 일을 쉬고 집에만 있으면서 쉴새 없이 영화를 보고 방치해 둔 블로그나 할 생각이었는데, 한순간에 방안과 나의 정신은 엉망이 돼버렸다.
 

지난 7월의 폭우로 매우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강남이었다. 사실 내가 사는 강북 쪽은 큰 피해는 없었지만 배수에 문제가 생겨 물이 못 빠져나가 방바닥으로 올라오게 된 것이었다.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려던 내 계획은 방안에도 물이 들어옴으로써 말 그대로 물거품이 돼버렸다. 가전 제품은 미리 다 책상 위로 올려두어 다행이었지만 언제 비가 그칠지 모르는 길고 긴 시간을 이제는 공허한 침묵 속에서 보내야 했다. 물이 흥건한 방안에 덩그러니 놓여진 침대는 마치 플로팅 아일랜드와 같았다. 이 때처럼 많은 격려를 받아 본 적이 있을까? 더 이상 밥도 차려먹을 수 없는 중에 친구가 보내준 파리바게트 기프티콘이 어찌나 고맙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꼬박 사흘을 한두 시간에 한번씩 물을 퍼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얼마나 물이 차 오를지 모른다. 더욱 많은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 잠을 푹 자두어야 하니 침대 위에 그 지친 몸을 뉘이면 그 때서부턴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다는 건 정말 미치는 일이다. 그렇게 피곤한 몸을 야속한 그녀에 대한 생각이 짓이겨버린다. 거침없이 들어오는 물은 아무렇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비가 그치면 싹싹 다 빼버리고 말리면 되는 것이다. 날 힘들게 하는 건 내게 너무 무관심한 그녀였다. 어느 때부턴가 더 이상 내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그녀 때문에 슬펐다.
 
베트남, 홍콩 출국을 앞두고 몇 주 전부터 기회만 있으면 주위의 여자들에게 화장품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홍콩가면 다른 무엇보다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을 사주고 싶었다. 예쁜 옷들도 사주고 싶었다. 가난한 학생인지라 그녀의 시선을 알면서도 애써 지나쳐야 했던 것들을 죄다 사다 주고 싶었다. 그녀가 내게서 떠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날 귀찮아서 차버릴 때까지 난 떨어지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었다. 내가 한 그 약속을 어떻게든 깰 수 없어 그저 바보같이 그녀에게서 내려질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사랑하기로 했다. 다 내어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버티며 홍콩을 다녀오려고 했었다.
 
남들이 보기엔 한심한 병신 같을지 몰라도 그녀의 바보인 내가 좋았다.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 말마따나 하트가 쏟아질 것 같은 내 눈이 스스로 좋았다. 그녀를 애타게 사랑하는 내 자신이 좋았다. 
 
금요일. 비가 그쳤다. 휴가를 나온 동생이 형을 도와주겠다며 서울로 올라왔다.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란 존재는 어쩌면 부모님보다도 더욱 의지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동생과는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며칠 같이 지내는 동안 많이 피곤 했는지 매일 밤 코를 안쓰러울 정도로 크게 골더라.


옆집에 십 년을 사신 내외도 물이 이렇게 들어온 건 처음이란다. 한번 들어오기 시작한 물이니 다음에 비가 오면 방안으로 또 물이 차 오르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집주인은 천만 원의 거금을 들여 공사를 하기로 결정을 했다. 주인도 세입자도 견디기 힘든 폭우였다. 공사 업자가 다녀가며 계산을 하더니 공사 기간으로 최소 열흘은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 동안은 집에서 나가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짐도 밖으로 다 빼둔 채로. 베트남 출국은 그 다음주 수요일 이었다. 홍콩을 거친 8박 9일의 일정이었기 때문에 다행스럽게 공사 기간과 시간이 잘 맞물렸다. 

 
토요일. 동생과 짐을 포장하고 밖의 처마 밑으로 둔 후 비가 맞지 않게 비닐까지 덮어 씌웠다. 냉장고나 세탁기는 다음날 인부아저씨들이 오셔서 빼주신다고 내버려 두란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동생이 짐을 싸면서 내 여권도 함께 박스 포장해버린 것. 동생이 뭘 알았겠는가. 미리 여행가방에 여권을 챙겨두지 못한 내 잘못 이었다. 두 시간 동안 땀 뻘뻘 흘리며 쌓은 짐을 몇 번이고 열어 뒤졌던 아찔하고도 허무했던 그 시간. 정말이지 끔찍했고 멀리 와준 동생에게 참 미안했다. 
 
침대는 버려야 했다. 커플 티셔츠, 운동화를 하고 다니는 커플들이 그렇게 시시할 수 없었다. 우리는 커플 침대를 쓰는 사람들이었다. 일부러 그녀의 것과 똑 같은 것으로 구입했었다. 침대 아래 서랍까지 있어서 속옷이나 양말 등을 정리하기도 좋았다. 그 하얀 침대는 이리 저리 분해되어 목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로 돌아갔을 것이다.


여권을 찾고 짐 포장을 다 하고 나니 오후 여섯 시쯤 되었을까? 걸어서 십오 분쯤 거리에 고모할아버지 댁이 있는데 출국 전 며칠 동안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동생은 친구를 잠깐 만나고 오겠다고 했다. 
 

냉장고엔 그녀와 함께 마시기로 했던 화이트 와인 몬테스 알파가 있었다. 그녀는 올리브 스파게티를 만들어 달라 했다. 예행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 현관의 물을 퍼내던 첫날 밤 혼자 만들어 먹어봤다. 그녀와 먹을 땐 물에 소금간을 조금 더 해 면을 삶아야겠고 올리브유는 조금 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냉장고의 모든 것들도 빼야 하니 아예 그녀의 집에 가져다 두려고 와인과 수박을 꺼냈다. 여름엔 밥보다 수박을 더 많이 먹는 것 같은, 그렇게나 수박을 좋아하는 그녀였다. 수박을 사다 주신 고모할아버지껜 옆집 내외와 공사 인부아저씨와 나눠먹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지친 몸을 이끌고 간 그녀의 집 앞. 그 집 앞에서 와인과 수박은 마지막 끈이었던 관계라는 것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 날 새벽녘 겨우 잠들어 잠깐 꾼 꿈에 그녀가 나왔었다. 꿈속에서 그녀가 내게 한 말은 "그만 헤어져." 그리고 그날 저녁 거짓말처럼 우린 헤어졌다.

7월 30일 토요일. 

한여름의 폭우는 내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고모할아버지 댁을 모르는 동생을 마중 나갔다. 동생과 미아리 어느 골목길 돌계단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형 헤어졌다.”
 

“,,,잘했어.”
 

“나중에 잘 말씀드릴 테니 부모님껜 절대 비밀이다.”
 

“응,,,” 

 
변변한 신호등도 없는 무질서한 베트남 거리에 눈물 몇 방울 흘리고 아픔도 조금 흘리고, 홍콩의 어느 해변가에서 또 눈물 몇 방울 흘리고 아픔 조금 흘리고 그녀에게 엽서를 부쳤다. 늘 주고 받는 편지이였지만, 가끔은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여 느릿한 절차를 거친 ‘진짜 편지’를 보낼 심산으로 그녀의 영수증에서 오려두었던 주소였다. 누가 알았겠나. 우표를 붙인 느릿한 편지가 그녀와의 만남을 정리하고 축복을 빌어주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진짜 편지’가 될 줄은,, 
 
며칠을 수면유도제에 의존했다. 매일같이 새벽녘의 꿈에서 나타나는 그녀는 여전히 내 옆에 있었다. 그녀를 떠오르게 하는 것들은 모두 트라우마로 다가왔다. 그녀와 나의 이야기들로 채워진 빳빳하고 차가운 몰스킨 다이어리를 펼칠 수가 없었다. 아파하고 아파하고 미워하고 그리고 애타게 그리워했다. 가끔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무뎌질 만하면 더더욱 들춰냈다. 아플 수 있을 때 마음껏 아파하고 싶었다. 아픔의 깊이만큼 사랑했을 것임으로,, 아픔의 기간만큼 잊지 못 할 추억을 공유했을 것임으로,, 그래서 애써 잊으려 하지 않는다. 동사서독의 구양봉도 말하지 않았던가 
 
“취생몽사는 그녀가 내게 던진 농담이었다.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갖지는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
 
지금 생각해보면 여권을 찾아야만 했던 그 두 시간. 새벽의 꿈. 몬테스 알파. 오려둔 영수증 하나 하나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 이루어진 것이기에 만남은 기적과도 같은데 헤어짐도 결코 쉽지만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혹은 알고 있지만 인정하기 싫음에서 비롯되어 ‘만남은 힘들고 헤어짐은 쉽다.’라고 변명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그녀는 밤고양이가 되어 살그머니 다녀갔다. 그녀가 두고 간 긴긴 편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그녀는 거짓이 없는 사람이다. 비로소 그녈 놓아줄 수 있게 된 것 같다. 문득 문득 떠오르겠지만, 가끔은 물밀 듯 그리움이 덮쳐 오겠지만,, 그러한 그리움도 언젠가 찾아올 사랑이 덮어줄 것이다. 교통사고처럼 갑자기 찾아올 새로운 사랑이,,
그녀나 나나 참 ‘돌아이’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게 됐을 거다. 돌아이라서 정말 잘 통했거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길가에 쓰레기를 기어코 지나치지 못 하는 그런 여자였다. 선생님을 생각 하며 눈물을 흘리는 여린 사람이었다.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그리고 날 사랑했었던 여자였다.

첫 사랑,,

여기까지,,



Ps
1. 전반적인 지난 여름의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죄다 그녀만 등장하는 이야기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이 역시 논픽션 리얼 스토리.
 
2. 다시 다이어리를 펼쳐 쓰기 시작했다. 나의 허세를 입증하는 물건 중 하나인 몰스킨.

3. 그리워하던 듄님의 목소릴 들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영영 가버린 줄 알았던 요루누나도 다시 와주었다. 모두에게 어찌나 감사한지. 정이 많아 큰일인 미라수. 이제 마르뜨님만,, 너무너무 보고 싶다.

4. 혈액형과 별자리가 같은 자칭 외계인 ‘아민’님을 알게 됐다. 아민님을 제 멘탈리스트로 임명합니다. 제 머릿속을 끄집어 내주세요. 저도 제가 뭔 생각을 하나 참 궁금하거든요.

5.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멀어지려 이사를 가려 했으니 막상 방 구하기도 쉽지 않고, 공사도 잘 돼있어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이사 아닌 이사를 오게 됐다. 또 수해 겪으면,, 나라에서 지원금 줄테지,,

6. 그렇다 지원금과, 국민 성금까지 받았다. 기대했던 것보다 꽤 큰 금액이었다. 꼭 필요한 것들을 다시 사고 하는데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지만 침대 등을 들여놓지 않아. 남은 돈은 정신적인 피해 보상과 등록금, 겨울 보드 장비와 시즌권을 끊는데 보태 쓰기로 했다. 지금껏 살면서 여름에 잊을 수 없는 행복했던 기억들이 거의 없다. 늘 겨울에 행복했었다. 어서 눈아 내려라. 올 겨울은 보드로 행복을 누려야지,,

7. 그래서 산 686 보드복. 당연 이월이지만 너무 맘에 든다.


8. 그리고 포트만의 추종자인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