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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가래떡 추억


누군가를 좋아하면 천생연분이나 정해진 운명인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서로의 공통점 찾기에 몰두한다. 수백 가지의 음식들, 수천 곡의 음악들, 취향, 취미, 특기 등 셀 수 없이 많은 나를 둘러싸고 구성하는 것들 중에서 고작 몇 가지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 역시 우린 천생연분이야.”
“방금 텔레파시 보냈다.”
 
라고 말하며 희희낙락 거리지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저 많고 많은 우연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러나 이렇게 사소한 우연, 우연들이 연애의 즐거움 아니겠는가? 그녀와 내게도 음식에 관한 몇 가지 우연의 천생연분거리가 있었다. 
카레와 번데기를 싫어한다는 점. 그리고 떡국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자주 나와 그녀의 집 냉동실에는 가래떡이 있었다. 밥을 먹자니 부담스러운데 뱃속은 뭔가 아쉽고 입이 근질거릴 때면 가래떡을 꺼내 구웠다.(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끝내주게 가래떡을 잘 굽는다. 노릇노릇하면서 타지도 않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쭉 늘어나는 치즈처럼...) 김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가래떡을 꿀에 찍어 먹으며 말했다.
 
“난 이 맛있는 가래떡을 왜 굳이 힘들게 썰어서 국을 끓여 먹는지 이해가 안가.”
“떡국이 뭐가 맛있는지 모르겠어.”
“오! 나도 나도.”
 
그녀는 내 이러한 생각에 놀란 것 같았고 나 역시 그녀의 반응에 놀랐었다.
 
“역시 우린…”

가래떡과 같은 아주 사소한 우연적 요소들 덕분에 길을 걷다, 머리를 감다, 때론 지독한 우울에 빠져있다가도 피식피식 웃을 수 있다. 어느 노랫말처럼 사랑 못지않은 추억의 힘 아니겠는가?

이미 지난달부터 포장해 놓은 빼빼로들을 도처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어제는 장을 보러 이마트엘 갔더니 역시나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더라. 밀레니엄 어쩌고 저쩌고, 천년 만의 빼빼로데이 어쩌고...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도 빼빼로를 드셨나 보다. Y2K같은 밀레니엄 빼빼로 따위. 

어느 한구석도 맘에 들지 않는 상술의 날이지만, 그래 뭐,, 사랑하는 혹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의미로 빼빼로 한두 개씩 사서 주는 걸 뭐 그리 나쁘게만 바라 볼 일이겠는가? 그렇지만 볼품없는 사각형의 빼빼로 상자들을 풀로 덕지덕지 붙여 대강 하트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무리 봐도 최악이다. 이건 뭐 예쁘지도 않고 성의도 전혀 없어 보인다. 소중한 애인에게 빼빼로를 건네고자 하는 남자들이여 그렇게 빼빼로든 뭐든 줘야겠거든 제발 부탁인데 머릴 쥐어 짜서라도 아이디어와 성의를 담아라.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 따위가 아니다. 국가가 지정한 ‘농민의 날’이다. 빼빼로나 이벤트에 전전긍긍하는 당신. 밥상에 앉아 당신이 먹은 쌀밥, 반찬을 만들어준 농민에 대해 한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 있는가? 일년 1095끼니를 먹는 동안 당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흘린 땀방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무튼 결론은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감사하자는 것. 빼빼로든 가래떡이든 무언가를 꼭 줘야겠다면 진짜 성의를 담아 주자는 것.




내가 사랑하고 또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11월 11일엔 그 사람을 위해 빼빼로가 아닌 가래떡을 구워주고 싶다. 초콜릿보다 더욱 달콤한 꿀을 찍어서 말이지…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그 사랑은 내가 건넬 가래떡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leesongheeil 이송희일감독         
 
담배 사러 편의점에 들렀는데, 벌써부터 한 커플이 빼빼로 타령. 그렇게 숫자 1을 기념하고 싶거들랑, 당분 많은 빼빼로보단 더 크고 굵고 맛있고 영양 좋은 가래떡으로. 농촌도 돕고, 건강에도 좋고 얼마나 좋니, 이 커플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