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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운명의 힘





지난 금토일 황금 연휴 동안 예술의 전당에서는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오페라가 열렸다.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공연 티켓을 얻었고 그 공연장에서 겪은, 어쩌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다 겪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본다.



평소 잘 알면서도 잘 모르는 지인 C님으로부터 토요일 저녁 타임 공연표를 양도받은 건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이었다. 매우 갑작스러웠던 제의였지만, 그 주 따라 평소 가장 바쁜 토요일에 마땅한 일이나 약속이 없어 별다른 고민 없이 표를 양도받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촬영한다고 쉬지 않고 일했던 토요일이었던 만큼 하필 왜 이날만큼은 일정이 잡히지 않았던지 의아하지만(여기서부터 시시한 의미부여는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막힌 타이밍이었음은 확실하다. 수업이 없는 목요일부터 연휴기간 동안 종일 몰두해있던 사진 편집 작업으로 눈은 눈대로 피로하다. 서너 평 남짓한 방안 생활의 답답함은 극에 달해 있다. 그래서였을까? 꾸며 입고 나오는 발걸음은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홀씨 같았고 날 좋은 주말 저녁의 선선한 온도는 어쩜 사람을 들뜨게 하는지, 그렇게 예감 좋을 수 없었다.



주로 콘서트 홀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거나 미술관의 전시회 감상이 전부였기 때문에 오페라극장은 또 처음이었다. 무엇이든 자신과 연관된 (좋거나 혹은 멋져 보이는)일에 관해선 남에게 알려야 직성이 풀리는 DNA로 똘똘 뭉친 인간 아니던가? 당연한 절차인 것 마냥 주위 인파들과 함께 로비 한복판에 웅장하게 걸린 현수막 인증샷을 찍고 나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한껏 목을 세우고 여유를 부리며 홀로 들어간다. 티켓에 표기된 곳을 찾아 약간은 뒷줄이었던 좌석에 앉았으나 공연 시작 직전 비어있던 2층 정중앙 맨 앞줄로 이동해 두 다리 편히 뻗고 무대를 내려다 보니 드는 생각.


'아.. 어쩌면 만날 수도 있겠다...'



여름철 폭우에 느닷없이 도시의 산이 무너져내려 안타까운 사상자가 나온 날로부터, 두 눈 뜨고도 믿어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이별한 날로부터 어느덧 2년 가까이 흘렀다. 덧없는 시간처럼 훌륭한 명약이 과연 또 있을까?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했던, 그래서 깊고도 깊게 파였던 한구석은 날이 가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달램과 애써 무심함과 정신없이 바쁨과 또 다른 시선들에 의해 조금씩 조금씩 채워지고 바래져 갔다.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 깜빡 잊고 살다가 텅 빈 무대 위를 바라보니 어쩌면 이곳 어딘가에 앉아서 같은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덜컥 들었던 것이다. 그래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었지.



이미 검증된 배우들의 가창력은 두말할 것 없었다. 주인공들은 사람의 몸만 한 악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말하듯이 실력을 뽐내고 있었고 객석의 관객들은 무대 위를 숨죽이며 바라보다 노래가 끝나면 연신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곤 했다. 전율하고 때론 비판하다 보니 벌써 2막이 끝나고 잠깐의 쉬는 시간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객석에 불이 들어온다. 휴대폰엔 닟선 번호로 전화가 와있었고(사진 기사를 구한다는 광고란 광고에는 죄다 지원하는 요즘이기 때문에 새로운 번호는 택배가 왔다는 소식보다 더 반가운 일이다) 궁금함에 홀을 빠져나오기 전부터 손가락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신호음을 들으며 로비로 나온 그때, 세상에, 저 앞에서 걸어오는 여자는 누군가? 당황한 나머지 당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말하며 급히 끊어버렸고 내 옆을 스치며 화장실로 들어갔던 여자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혹시 잘못 본 게 아닌 정말로 그녀라면, 과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화장실에서 나오는 여자를 찬찬히 쳐다보니 흠칫 놀라는 눈치다. 그도 그럴 테지. 머리는 정신없이 길고 검은 수염은 덥수룩한 생판 처음 보는 남자가 자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니 당황스러웠겠지. 역시 잘못 봤던 것이다. 그러나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두근 거렸던 마음은 객석에 앉아 다시 시작한 공연이 한참 지났음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더라. 전력 질주를 한 것도 아닌데 잠깐의 마주침으로도 미친 듯 빠르게 뛰던 심장이, 감정에 의한 인체의 반응이 새삼 너무나 신기한 거다. 옛사람을 우연히 마주치거나, 누군가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거나 아니면 모두 없애버렸다고 생각한 사진을 우연히 본다거나, 그 사람이 썼던 샴푸 향을 어디선가 다시 맡았을 때 출몰하는 일렁거림은 과연 어떤 감정인가? 그것이 분명 사랑은 아닐진대 그렇다면 여전히 남아있는 아픔인가? 괜한 미련인가? 거스를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그리움인가?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니 공연에 대한 집중은 온데간데없다.

아아.. 정신 차리자. 여기까지 와서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연기자들에게도, 티켓을 마련해주신 분께도 예의가 아니다. 다시 내려다본 무대 위에선 여주인공 레오노라의 오빠 카를로가 자신을 구해준 알바로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정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카를로는 전쟁에 나갔다가 총탄에 맞고 병상에 누운 알바로를 살려내라고 군의관을 닦달한다. 명예를 건 결투로써 복수하기 위함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명예는 목숨보다 중요하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고, 돈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종잇장처럼 찢어버리는 게 인간 아닌가? 고등 동물이라 자평하는 인간이야말로 그 어떤 짐승보다도 원초적이고 미련한 존재다.

아.. 또 집중력을 잃었다. 잡생각이라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들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그러나 맺음을 확실히 해야 할 때도 분명히 있지 않나?(매우 많다) 오페라는 3막의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무대가 바뀌며 집시 프레치오실라가 노래를 부르고 많은 인물이 쏟아져 나와 무대는 삽시간에 복작스러워졌다. 그러나 그때 나는 봤다. 무대 한구석에서 노랠 부르고 있는 그녀를 말이다.

이 저주받은 눈썰미는 어떻게 된 게 코앞의 사람은 착각했으면서 거의 알아보기 힘든 무대 위의 인물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아무리 맨 앞 줄 이었다지만 2층이다. 무대 위의 인물들을 제대로 보기에는 분명히 먼 거리이기 때문에 가뜩이나 나처럼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은 핀조명을 받는 주인공조차 누구인지 알아보기 쉽지 않다. 분명 흐릿한 얼굴로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연기하는 특유의 몸동작이 그녀라는 사실을 강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3막이 끝났고 마지막 막이 시작됐다. 호흡을 가다듬고 여주인공의 노래에 집중해보았지만, 그 아름다웠다던 아리아에 대한 기억은 안타깝게도 남아있질 않다. 다시 배우들이 쏟아져 나온다. 조명이라도 밝게 비치는 쪽에 있으면 좋을 것을 그렇지 못해 얼굴로는 못 알아보겠다. 그러나 몸에 밴 오랜 습관은 점점 더 크게만 보인다.



막이 내렸다. 무대 밖에서는 많은 감탄과 아쉬움과 시원함이 쏟아져 나왔지만, 나는 도무지 그날의 공연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일 테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치지 않겠나?란 생각은 했었지만 '살면서'라는 수식을 붙이기엔 2년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이른 시간이 아닌가? 영화 속의 제시와 셀린느도 '극적'이고 '우연적'인 만남의 시간은 최소 9년쯤이라고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2년이라는 짧은 시간 후의 만남이 왠지 꺼려지기도 했으나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엔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출연자 대기실을 찾아갔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이었던 게지.. 

연기를 마친 주인공들이 한 사람, 두 사람 나오고 그들의 가족, 지인, 제자들은 손뼉을 치며 축하하고 포옹한다. 그러나 좀처럼 그녀는 나오지 않는다. 이번에도 내가 잘못 봤을까? 혹시 그녀의 지인 중 내가 아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도 본다. 머리도 만져보고 옷맵시도 가지런히 한다. 만나야겠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기다리는 마음은 아까보다 좀 편안해진 듯도 하다.



우리는 계단 중턱에서 만났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는 변함없이 예쁘다. 남들 앞에서 늘 당당하던 긴 머리카락과 수염이 왜 그렇게 그녀 앞에선 초라하고 후회스럽게 느껴졌을까? 편한 감정으로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하기엔 역시 2년은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굳어버린 내 얼굴을 직접 찾아가 대놓고 보여준 꼴이었다.

헤어짐의 인사에 흔하디흔한 '다음'이나 '또'라는 무책임한 기약은 붙지 않았다. 그저 '잘가..'라는 한 마디뿐이었다.



그렇게 각별할 수 없었던 누나, 동생인 시절이 있었다. 특별한 연인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과거의 그저 좋았던 모든 것들까지 모조리 걸어야 하므로 결코 예전의 누나, 동생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지만, 때론 의지로도 못 막는 게 마음 아닌가? 누구보다도 막역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이나 아쉬움이야 물론 있지만, 어느 겨울밤 그녀의 집 앞에서 했던 고백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언젠가 그녀를 만나면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말하지 못했고 9년쯤  지난 뒤에도 역시 말 못할지 모른다. 아마 그때쯤이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저 무의미한 추억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볕 좋던 하루 전날, 무수히 많은 인파가 서랍에 고이 모셔둔 선글라스를 끼고 나와 막바지 봄을 즐기고 있던 날, 나는 어울리지 않게도 우산을 샀었다. 공연 전에는 내리지 않았던 비가 공연이 끝나니 괜히 쓸쓸히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지나간 사람과 마주쳤다는 묘한 감상에 젖어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기엔 시간도 감정도 많이 흘러 벼렸다. 기약 없는 우리의 끝인사를 무색하게 만들었던 오페라의 이름은 '운명의 힘'이었다.


'운명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