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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었다 집집 담벼락을 수놓던 장미는 져버렸다. 계절이 바뀌었다. 더보기
적당한 외로움 모순적이게도 적당한 외로움은 어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한 달에 하루만큼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날을 정해 인적 드문 갤러리들을 방문하고 고궁의 담길을 따라 걸으신다 하셨던 분은 어느 노교수였던가?어제의 일이 참 고단했지만, 부지런히도 산다는 말을 들으며 이르게도 일어나 집을 나왔음은 며칠 전부터 올라와 있는 오랜 친구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2013.06.13 더보기
즉흥적 날들 눈을 뜨고 (몇 시간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5월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젊은이에겐 악몽 같은 시절도 좋은 시절이지만, 어쨌든 더위를 끔찍이 못 견디는 내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좋은 시절의 마지노선은 5월이다. 작년, 호주에서도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며 살 수가 없었다. 투잡, 쓰리잡을 뛰는 동안 하루 이동거리만 백여 킬로미터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날이 더욱 바쁘고 힘들게 느껴짐은 쳇바퀴처럼 고정된 틀 속의 하루하루가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일들이 꽤 다양하고 즉흥적이기 때문이렸다? 좋은 시절의 마지막 날을 충실하게 보내겠다는 일념이 어느 정도 통했던 하루였다. 새벽녘에 잠들었지만 기필코 이른 시간에 일어나 방안에서라도 운동을 했고 학교 가기 전에는 헌혈을 했다. 연신 고갤 끄덕이며 수업을 들었고(졸.. 더보기
운명의 힘 지난 금토일 황금 연휴 동안 예술의 전당에서는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오페라가 열렸다.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공연 티켓을 얻었고 그 공연장에서 겪은, 어쩌면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다 겪는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본다. 평소 잘 알면서도 잘 모르는 지인 C님으로부터 토요일 저녁 타임 공연표를 양도받은 건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자정 즈음이었다. 매우 갑작스러웠던 제의였지만, 그 주 따라 평소 가장 바쁜 토요일에 마땅한 일이나 약속이 없어 별다른 고민 없이 표를 양도받을 수 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촬영한다고 쉬지 않고 일했던 토요일이었던 만큼 하필 왜 이날만큼은 일정이 잡히지 않았던지 의아하지만(여기서부터 시시한 의미부여는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기막힌 타이밍이었.. 더보기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Keith Jarrett Trio / Blame It on My Youth / Live in Tokyo 1986 공연에 앞서 김현준 재즈비평가는 이런 말을 했다. "한국인들은 연주 후의 잔향을 즐기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연주가 끝날 때쯤 터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도 물론 나쁜 건 아니지만, 마지막 소리 하나까지 듣고 난 후에 환호해도 결코 늦지 않아요."정말 그렇더라. 키스 자렛의 마지막 손가락 움직임에서 나오는 희미하고 섬세한 울림이야말로 연주의 정점이었다. 모든 소리가 공기를 타고 흐르다 소멸해 적막에 이를 때까지의 그 짧고도 긴 시간을 기다려 주는 건 연주자나 청취자뿐 아닌 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유수의 피아니스트들이 건반 위를 뛰논다면, 키스 자렛은 연주는 마치 피아노와 섹..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