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6





장소는 하이원

옷은 어스투

데크는 케피타

사진은 처리형

편집은 미라수





1년 중 3월이 가장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보드 시즌이 끝나갈 무렵이라 더욱 무리를 해서 무릎이고 허리고 통증이 한 가득이니.. 엄마껜 늘 괜찮다고만 말하는 게 어제오늘뿐이었나?









졸업이다. 아직 잘 실감이 나진 않지만.. 

앞으로 졸업이라는 행사가 또 내 인생에 있을까? 그것을 모르겠으니 약간은 감성적이게 되는 것도 같고.. (그래 봐야 졸업식엔 가지도 않을 거면서..)


대학 생활에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전남대 도서관을 다니며 재수하던 시절, 그 넓은 잔디밭에 과별로, 동아리별로, 같은 고등학교 출신들로 도란도란 둘러앉아 무엇을 하든 만면에 웃음 가득 띤 학생들을 바라보며 부러워도 하고 일 년 후의 캠퍼스 생활을 마음껏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그 일 년 후는 매우 실망스러웠는데, 이미 입학 전의 오티부터 재미없었지, 학교는 코딱지만 해서 젊은 무리들이 기타를 치고 술판을 벌일 넓은 잔디밭조차 기대하기 힘들었지, 음대, 미대도 없는 학교라 교양 수업의 깊이와 다양함이 떨어졌고 원론 위주의 전공 수업들은 그렇게 지루할 수 없었다. 들어가고 싶었던 밴드 동아리 오디션에서는 번번이 떨어졌고 사진 동아리의 군대식 규율이 맘에 안 들어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에서의 자취 생활이 나를 너무 바쁘게 만들었기에 꿈꾸던 대학 생활을 즐기기는커녕 늘 일에 찌들어 살아야 했다. 사람이 어찌 사나 싶은 반 평 남짓한 고시원비를 내기 위해, 용돈을 마련하고 새 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등록금을 보태기 위해 시간만 나면 아르바이트를 했다. 참 많은 일, 그러니까 과외부터 식당, 길거리 장사, 물류센터 상하차, 공사장 막일, 시골 양계장일 그리고 징그럽게도 오랜 시간을 일해온 호텔일까지. 어디 이뿐일까?.. 그중 가장 싫었던 일은 학교 학생식당에서의 일이었는데, 학생들이 그다지 없는 저녁 시간이었지만 가끔 동기가 학식에서 밥이라도 먹고 있으면 마주치지 않게 고개 푹 처박고 구석에서 빗질을 했더랬다. 아무렇지도 않아야 할 일인데 뭐가 그렇게 창피한 것처럼 행동했을까? 그땐 그렇게 바보같이 어렸다. 

새내기라면 누구나 할법한 미팅, 소개팅 한 번 해보지 않았다. 사실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좀 더 즐길 것을 왜 그러지 못했을까? 지금은 술을 매우 잘 찾아 마시고 아끼기도 하지만 육칠 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의 기독교적인 신념에 술은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고, 때문에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로 남을 만한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다. 나는 대학 생활이 외롭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재밌지도 행복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도서관에 앉아 공부만 하는 우등생도 아니었다. 1학년 때의 성적은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매우 좋았으나 그것은 대부분의 신입생이 학점 관리는 뒷전에 두고 새로운 생활을 만끽하는 데 편승한 얻기 쉬운 점수였을 뿐. 일반적인 현상과는 달리 군을 전역하고 복학한 뒤로는 무분별하게 외워야만 하는 수업, 시험이 너무나 싫어 A부터 F중 하나로 구분되어야만 하는 성적은 자연스럽게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내려만 갔다.

별다른 추억이 없다 여겼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학교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없었다. 고교평준화가 된 이후 소위 꼴통 학교로 불리기도 했던 광주일고. 그러나 나는 그 억척스러우면서도 왠지 정이 듬뿍 있던 고등학교를 늘 아끼고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나의 대학 숭실대에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나름 우등생으로 구분되어 다른 수업을 들었던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대, 연고대를 꿈꿔왔던, 그렇기에 첫 수능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재수까지 했던 나는 결국 점수에 맞춰 올 수밖에 없었던 숭실대를 사랑하지 못했고 내 인생의 첫 실패라 여겼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외부에라도 들고 나갈 때면 '숭실대학교'라는 스티커가 보이지 않게 습관적으로 책을 뒤집어 놓곤 했다. 창피했다. 친구들은 다 서울대 연고대인데, 못 가도 성균관인데.. 나는.. 나는..

왜 그랬을까? 대학의 이름이라는 것은 그저 어느 이력에 한 줄을 채워넣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이력서라는 종이 한 장이 나라는 한 사람의 전부를 표상하는 것이 전혀 아닌데.. 학교보다, 학과보다 어느 자리에 서 있는 개인의 노력이, 발자취가, 재능이 미래를 만들어갈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한국의 기형적인 입시 문화에, 줄 세우기 급급한 교육 문화에 그 누구보다 찌들어있던 나였다. 그렇게 비판하곤 했으면서 말이다. 

부끄럽다. 

숭실이라는 이름에 참 미안하다.


사실 여전히 삼백, 사백 하는 대학교 등록금이 그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질 낮은 수업이 많으며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학교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을 찾으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만난 내 사람들, 숭실대 07학번 벤처의 동기와 선배들, 트위터 등으로 사귀게 된 타과의 친구들, 노력과 열정을 매수업 뿜어내시는 교수님들, 대부분의 전공 과제를 차지한 사업계획서의 기획과 실천, 철학의 사고, 언론홍보학의 상상력 그리고 아끼던 몇몇 교양 수업들, 책들, 생각들은 수백 수천만 원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나의 띄엄띄엄 떨어진 4년간의 훌륭한 기억이며 재산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이 모든 것은 과거의 이야기로 남으며 동시에 새날의 발판이 되리라.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장소에서 또한 시간에서 '졸업'을 할 테지만, 학교라는 '배움의 터'에서 졸업하는 것이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내일의 졸업식이 시원도 하고 섭섭도 하고 또한 이만큼 컸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는다.

이제는 "아직 학생인데요?"라는 세상을 앞둔 20대 나름의 변명을 더는 할 수 없겠지. 나는 여전히 어리지만 그럼에도 남들이 인정하는 성인으로서의, 사회인으로서의 첫걸음이 기대되기도, 떨리기도 하는데, 뭐..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치킨 먹고 싶을 때는 치킨 먹으면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지 않겠나?


그럼 이만 작별을 고하자.

안녕, 숭실.

진짜 안녕, 나의 길고 길었던 학창시절이여...






그리고 지금은..

여느 졸업 때와는 달리 당신 형편 좋지 않으면서도 대학 잘 졸업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주신 아빠, 엄마 생각만 난다.

고마워요 엄마 아빠.












이 밤, 대화를 하고 싶다. 어떠한 주제에 관해서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사실 극히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생각해봐! 어떤 남자와 만나면 늘 여자 이야기. 어떤 선배와는 돈 이야기. 어떤 동창과는 직장 이야기. 스포츠, 최신 영화, 연애, 정치... 아... 이렇게 한쪽 주제만을 가지고 우리가 만남을 지속해야 한다면 미안하지만 난 당신을 진짜 친구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니, 주제의 다양성이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이유도 아닌 것 같고 친구임을 판단하는 현명한 요소인 것 같지도 않다. 가만 생각해보니 늘 만나면 음악이나 문학, 또는 사진이나 어린 시절에 관한 대화를 반복해서 나누게 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대부분 그들을 끔찍이 아끼거든. 나와 당신이 함께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표현의 욕구가 잠 못 들게 하나? 표현의 욕구는 외로움의 또 다른 반증인가? 심지어 지금 써내려간 돌아이적인 생각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 우리 조만간 술 말고 커피 마시며 얘기해요. 취한 대화는 지나치게 솔직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엔 거의 대부분이 무의미하고 기억도 나지 않을 소모적인 것들뿐이야. 아직까진 의미 없는 것들이 싫어.




2014.02.06











 Chet Baker / Almost blue







음악 좋아하세요?

와 같은 질문은 사실 좀 적절한 질문은 아닌 것 같아요. 음악을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물론 찾아보면 어딘가엔 있겠습니다만..) 영화나 여행 등도 마찬가지구요.


어떤 음악을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이 상대방을 알기엔 더 괜찮아 보여요.

시도 때도 없이 귀에 이어폰을 꼽고 있다고 해서 음악을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최신 흥행 영화를 꼬박꼬박 연인과 챙겨본다고 그 사람이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애정이 고백의 횟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안 와 아예 맥주 한 캔을 들고 앉아 쳇 베이커의 음악을 듣고 있어요. 새벽과 더없이 어울리지요. 오스트리아의 화가 쉴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음악 , 좋아하세요 ?










하루는 길지만 1년은 짧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 없는 요 며칠. 분명 십, 이십 년 전에는 그 반대로 느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선물을 주고받고 그렇게 하지 못한 이들에겐 꼬박꼬박 안부 문자를 보내다 문득 드는 생각. 어쩌면 신은 우리의 사소하고도 귀중한 관계를 위해 '마지막 날'을 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올 한해 나는 또다시 새로운 것들에 뛰어들었고 낡은 것들을 멀리하려 했으며 여러 친구를 사귀었고 시든 인연은 과감히 포기하기도 했다. 살은 조금 빠졌고 기삿거리는 되도록 멀리했지만, 외모나 사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여기저기 잔소리의 난무에도 불구하고 머리와 수염은 길도록 내버려 두었다. 대학의 모든 과정을 마쳤으니 '아직 학생인데요?'라는 최후의 방패 같은 변명이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신이 나게 즐기던 프로야구는 이해하기 힘든 기아의 추락과 함께 쳐다도 안 보게 되었고 외질의 가세와 여러 포텐의 효과로 (아직은 위태롭지만)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아스널의 경기는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 보고 있다. 주말마다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나를 위한 쇼핑은 일절 하지 않았고 오로지 카메라 장비들을 사 모으는 데 주력했더니 벌려놓은 게 아까워서라도 일단은 몇 년 더 사진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은 사진을 찍으면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꽤 근사하고 내 성향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상수 어느 골목의 (그 누구도 데려가지 않는)아지트를 마련하고 매주 한 번씩은 들락거리고 있고 늦봄엔 오페라를 보다 무대 위의 구여친을 보고 나의 미칠듯한 눈썰미를 저주하기도 했다. 여느해보다 공연장을 자주 찾았던 해였는데 (연애를 하지 않으니 이때다 싶어 줄기차게 다녔던 거다) 단연 최고는 키스 자렛의 공연이었다. 크게 기억 남는 건 이정도. 아! 그리고 오랜 지인을 보기 위해 중국엘 다녀왔었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야시장에 앉아 마신 미지근한 맥주와 양꼬치는 꽤 근사한 추억으로 남으리라..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최대한 말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새해에는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뭐 하나라도 아는척하지 못해, 자랑하지 못해 머리털 한 가닥 한 가닥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하는 나라서 과연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지킬 수 있는 목표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