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부암동 석파정에서 별당 뒤꼍 길로 내려오다 숲길이 끝나고 빛이 만나는 곳에 갑자기 멈춰 지독히 고독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바라보는 부자(父子)가 있었음에도 갑자기 혼이 빠진 사람처럼 수 초간 고독을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날의 외로움이 되려 나를 자유롭게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그제야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발걸음이 가볍다.





사진은 제주,

벌판 위의 왕따나무를 담으려 찾아갔지만 짙은 안개에 나무 한 그루는 온데간데없고 별수 없이 내가 왕따처럼 서 있어야만 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큰 영광이자 행운이다. 그러나 내 이야기만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나 역시 상대방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몇 시간이고 앉아 누군가의 말을 들어준다는 게 말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인듯하다. 나는 좀처럼 내 흥미를 끌지 못하는 사람이나 소재 등에 대해 집중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반드시 생산적인 이야기일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과의 적당한 간극 유지가 중요한데 그것이 아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대화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핵심이라 믿는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이야기 혹은 대화에 관한 것이 아닌, '달리는 이유'에 관한 것이다. 나는 최근 꽤 지적이고 유능한 분을 알게 되었고 몇 차례 만나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풍의 영향으로 악마 같은 비가 잠시 휘몰아친 어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었다. 그녀는 곧 유럽으로 떠난다 하였는데 아직 주제를 못 찾았다고 말했고 나는 네덜란드로 고흐를 보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자리를 바꿔가며 영화에 관한 이야기, 우연과 운명에 관한 생각, 주거 공간에 대하여, 또 빨래를 하고 너는 방법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다 헤어졌다. 


집에 잘 들어갔다는 의례적인 문자를 받은 것은 한참 후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는데, 내용인즉슨 한껏 달리다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 밤중에. 낮에도 분명 운동을 했다고 들었는데 또 달렸다니.. 함께 먹은 저녁의 칼로리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특이하게도 배추가 올려진 꽤 식물적이었던 피자가 그 이유였을까? 아니다. 자정의 달리기는 뭔가 더 특별해야 한다.

일 년 중 지구와 가장 가까이에 달이 뜬 밤이었음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그 이유가 수긍이 된다. '슈퍼문이 뜬 날 밤. 나는 달리고 달리기만 했다.'라는 일기장의 한 줄은 나 같은 감성팔이에겐 꽤 매혹적인 여운으로 다가오는 구절이기 때문이다.(나는 정말 멍청하게도 일기의 한 줄을 위해 어떤 무의미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이것은 병일지도 모른다.)


냉정히 따졌을 때 평균 조금 이하의 운동 신경을 가지고 있는 나는 늘 여섯이서 달렸던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매번 네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하곤 했으며 그때마다 나보다 느린 두 명이 있다는 사실을 더 기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참 투쟁심 없는 아이였다. 

호텔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미친 듯이 바쁘고 피로가 극에 달하는 순간 오히려 구둣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가장 힘든 순간의 달리기가 얼마나 흥미롭고 벅찬 뿌듯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리라. 아드레날린의 실제적인 작용에 대해서 몸소 느낀 것은 호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달리기의 희열을 맛보면서였다.(이런 생화학적인 기분을 위해서는 어떤 뿌듯함이나 성취감이 동반되어야 한다.)

곧게 뻗은 아스팔트 길만 보면 연인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를 즐기는 괴상한 형이 있다. 나는 그것을 '아스팔트 러브'라 불렀고 나 역시 한 번은 키득거리며 연인의 손을 잡고 냅다 뛴 적이 있다. 좋더라. 누구의 손을 잡고 영원할 것처럼 달리는 즐거움을 알기 위해선 약간의 괴상한 용기가 필요하다. 

달리기는 이렇게 흥이나 사랑의 감정을 듬뿍 끌어올리기도 하는 반면,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떤(주로 아픈, 슬픈) 기억을 애써 죽이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중경삼림의 금성무가 그랬다. 잊기 위해 도시를 있는 힘껏 달렸다. 무조건 달렸고 끝까지 달렸다. 그리곤 참 미련스럽고 억척스럽게 유통기한 꽉 찬 파인애플 통조림 30캔을 먹어치우는데 잊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거 못 먹을 게 없고 죽도록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노릇 아닌가?(미련스럽다는 표현을 했지만, 매번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어치우는 장면을 넋 놓고 바라보곤 한다. 젊은 시절의 사랑은 충분히 무모해도 좋은 것일 테다.)


유능한 그녀이기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선뜻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속을 달래보려 달린 것일 수도 있고 잊을만하면 밀물처럼 쓸려 오는 고독함을 견뎌보려 달린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로 영롱하게 비치던 달빛을 아쉬워하는 마음에 달렸을지 나는 알 길이 없다. 떠나려 하는 목적이나 어떤 주제를 꼭 먼저 찾아야 할 필요는 없. 달려야 하는 이유가 꼭 정해져 있어야만 하는가? 진짜 중요한 건 동기가 아니라 달리는 행위의 실천, 그 자체에 있다.

달렸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지나가는 길에 어깨너머로 노화백의 팔레트와 붓질을 훔쳐본 기억은 비단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테다. 돌담을 갤러리 삼고 능숙하게 그림을 그리다 행인의 말 한마디 전해오면 매번 넉살 좋게 답해주는 노화백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덕수궁의 한 풍경이었다.



작년 봄이었을까? 

함께 길을 걸었던 엄마는 아이처럼 그림들을 좋아했고, 칭찬에 흥이 난 노화백의 입꼬리가 번지니 볼 위의 검버섯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들보다 덕수궁길의 노화백 같은 분들이 진짜 랜드마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노화백의 부고 소식을 들은 건 며칠 전 광화문을 지나면서였다.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입추가 지났다. 의례적으로 느껴지는 절기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놀랍게도 여름과는 전혀 다른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니 반갑기에 앞서 신기하기까지 하다. 옛사람들은 어떻게 '입추'를 정해 놓았을까? 

그제는 웬일로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아침의 공기며 빛깔은 푸르다. 가을엔 이 좋은 아침을 너무 자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가을엔 사랑하라는 인사말을 들었다. 사랑 말고 달리할 게 떠오르지 않아 그러겠노라도 답했다. 다가올 좋은 계절이 벌써부터 아련하고 아쉽고 그렇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장소가 있다.

상수동 336-16번지, 카페 스톡홀름이 바로 그곳이다.


2년 전,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고서 나만의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서너 달을 이 카페 저 카페로 돌아다녔었다. 보라색 페인트로 칠해진 상수동의 스톡홀름을 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작은 공간에 홀로 들어서기까지는.. 용기, 희한하게도 왠지 모를 용기가 필요했다.

가볼까? 하고 몇 번을 문 앞에서 돌아섰는지... 왜 그랬을까? 몇 달 조금이라도 일찍 들어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내밀한 공간을 찾기 위한 기준이 있었다. 다른 메뉴는 크게 상관없지만 커피는 맛있어야 한다. 조용해야 한다. 큰 창이 있어야 하고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좋아야 한다. 그리고 카페 안의 음악이 좋아야 한다.


작년 5월 5일의 일기에는 처음으로 스톡에 가서 마신 사이폰 방식으로 내린 커피에 대해 아주 간략한 소감 한 줄이 적혀 있다. '부드럽고 맛있다.' 그야말로 커피 맛은 코빼기로도 모르는 사람의 평가답기도 하지만, 분명 근처 카페의 기계에서 막 뽑아내는 커피와는 다른 맛이 있다. 술이며 커피며 신맛이 강한 것은 싫어하나 스톡의 사이폰 커피는 신맛이 굉장히 부드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 놀라곤 했다. 그리고 나만의 오해인지도 모르겠으나 사장님은 꼭 내 커피엔 아낌없이 커피콩을 갈아주시곤 해서 물 탄 아메리카노라도 맛과 향이 참 깊었다. 내 오해겠지? 그렇겠지? 


사실 사장님은 늘 먹을만한 무엇이 있으면 카페를 찾은 손님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곤 했다. 커피에 곁들인 수박, 바나나, 딸기, 블루베리라니. 가끔 조합이 재밌기도 했지만,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선물로 받았거나 직접 만든 초콜릿, 쿠키는 모아다가 커피 받침 위에 하나씩 놓아주기도 했고 가끔은 실험적인 음식을 반 강제로(?) 먹이고 평을 받기도 했다. 요상한 음식을 먹은 후의 당혹스러움을 잘 숨기지 못하는 나의 표정은 그녀의 요리 실험에 꽤 도움이 됐으리라.


힘든 주말 일을 마치고 조용한 쉼이 필요한 월요일이면 간절한 마음으로 스톡을 찾곤 했는데 도대체가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럴 때면 가끔은 맞은편의 이리카페나 혹은 다른 카페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발길을 돌려 집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만큼 내겐 스톡이 아니면 쉼터로써의 의미가 없었다. 오픈 여부에 대한 퍼즐 조각 같은 단서를 위해 스톡홀름의 트위터를 팔로우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는데 효과가 꼭 없는 건 아니었다. 고마운 사장님은 아예 스톡의 오픈 여부를 미리 알려주시기도 했는데 꼭 매일 찾는 것도 아니라 그러한 호의가 미안해 사장님의 알림 서비스를 마다하기도 했다. 


지난봄부터는 나만의 일을 하기 시작하여 스톡에서 여유롭게 쉬기보다는 노트북을 가지고 소일거리에 매진했지만, 그전까진 주로 일기를 쓰고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곤 했다. 스톡의 음악이 좋아 휴대폰에 담긴 음악을 들었던 적은 거의 없다. 자주 지금 카페에 흐르는 곡, 앨범에 관해 묻곤 했고 그때마다 성실히 답을 해주던 사장님은 언제나 부탁을 하면 흔쾌히 내가 원하는 음악을 틀어 주시곤 했다.


스톡홀름 창밖으로 보이는 상수동의 풍경은 여느 카페 거리와는 확연히 다른 매력이 있다. 다소 낡은 주택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인지 오후가 되면 유치원에 간 손자, 손녀가 할아버지의 주름 깊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개성 있는 음식점, 카페들 사이사이에는 촌스러운 방앗간, 컴퓨터 세탁소가 있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거나 밉상스럽지 않다. 뱃살과 함께 늘어진 메리야스만 입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저씨, 배고픈 인디 뮤지션과 담배를 놓을 줄 모르는 시인은 상수동 골목을 드문드문 채우고 있었고 여전히 혼자만의 삶을 즐기고 있는 중년의 건축가는 상수동 골목 골목을 산책하다 스톡에 들려 함께 걷던 애완견의 목을 축이게 했다. 꾸밈없는 거리의 풍경이 좋았다.


사장님껜 꽤 미안하다. 작년부터 스톡홀름에 대한 글 좀 써서 홍보에 작은 도움이라도 드려야지 했는데 나의 게으름은 몇 계절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 버렸고 이제는 홍보라는 게 무색해져 버렸다. 아무도 데려오지 않았던 이곳이지만, 꼭 한 번 데려오고픈 사람이 두어 명쯤 있었는데 이제는 영영 데려올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스톡처럼 많이 간 카페가, 아끼는 공간이 없었다. 비 내리는 날의 스톡 창가처럼 좋은 자리가 없었다. 스톡의 작은 것 하나하나를 애정어린 눈으로 잠시 바라보다 짐을 싸는 사장님 앞에서 차마 나의 아쉬움을 표현할 순 없었다.

6월의 어느 날, 카페 스톡홀름의 간판이 내려왔고 나는 그 위에 수국 여섯 송이를 남겨두고 나왔다.

 





































































































내겐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장소가 있었다.

상수동 336-16번지에 있었던 카페 스톡홀름이 바로 그곳이다.